Shortcut French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프랑스어 공부 블로그

장밋빛 인생을 노래한 Édith Piaf

'프랑스의 음악' 시리즈

  • 장밋빛 인생을 노래한 Édith Piaf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 정말 아무것도,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프랑스 샹송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Édith Piaf 입니다. 「La Vie en rose」는 영화와 광고에서 셀 수 없이 흘러나와서 가수 이름은 몰라도 멜로디는 아는 분이 많죠.

Piaf 는 파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노래하던 소녀였어요. 유명한 가수가 된 뒤에도 사랑과 사고, 병이 끊이지 않아 삶이 영화처럼 극적이었죠. 이번 글에서는 Piaf 가 어떤 가수였는지 재밌는 일화와 함께 소개하고, 대표곡 가사에 나오는 프랑스어도 살펴보겠습니다.

1. Édith Piaf 는 어떤 가수일까?

Édith Piaf 는 1915년 12월 19일 파리에서 태어나 1963년 10월 10일에 세상을 떠난 가수로, 본명은 Édith Gassion 입니다.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La Vie en rose」와 「Hymne à l'amour」처럼 직접 가사를 쓴 곡도 많고, 영화와 연극에도 출연했죠. 무대 뒤에서는 Yves Montand, Charles Aznavour 같은 젊은 가수들을 이끌어 준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키는 147cm 밖에 안 됐지만, 작은 몸으로 온몸을 울리듯 노래하는 모습이 곧 Piaf 의 상징이 됐습니다.

1962년 12월 네덜란드 Rotterdam 공연에서 노래하는 Édith Piaf

사진: Eric Koch / Anefo, Nationaal Archief (CC0)

2. 거리에서 무대로

Piaf 의 아버지는 거리 곡예사였고 어머니는 가수였습니다. 어린 Piaf 는 부모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 한동안 노르망디 Bernay 의 친할머니 집에서 자랐죠. 이곳에서 각막염을 앓아 앞을 거의 보지 못하게 됐는데, Lisieux 의 성녀 Thérèse 무덤에 다녀온 뒤 나았다고 해요. Piaf 는 그 뒤로 평생 성녀 Thérèse 를 마음 깊이 섬겼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떠돌며 거리에서 노래했어요. 열다섯 살이던 1930년에는 아버지 곁을 떠나 친구 Simone Berteaut 와 함께 파리 거리에서 노래해 돈을 벌었죠. 그러다 1935년 가을, 샹젤리제의 카바레 주인 Louis Leplée 가 Mac-Mahon 거리 모퉁이에서 노래하던 Piaf 를 보고 자기 무대에 세우면서 Piaf 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3. Piaf 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3.1. 길바닥에서 태어났다?

Piaf 가 파리 Belleville 거리 72번지 건물 앞 계단에서 태어났고, 지나가던 경찰관이 망토로 아기를 받아 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그 건물에는 1963년 Maurice Chevalier 가 이 이야기를 새긴 기념판까지 달았죠.

계단 위에 파란 대문이 있는 파리 Belleville 거리 72번지 건물. 대문 위에 Édith Piaf 기념판이 붙어 있다

사진: Polymagou, CC BY-SA 4.0

대문 위 기념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Sur les marches de cette maison naquit le 19 décembre 1915 dans le plus grand dénuement Édith Piaf

1915년 12월 19일, 이 집 계단에서 지독한 가난 속에 Édith Piaf 가 태어났다.

dont la voix, plus tard, devait bouleverser le monde.

훗날 그 목소리는 온 세상을 뒤흔들게 된다.

— Belleville 거리 72번지의 기념판(1963)

naquit 는 naître(태어나다)의 단순과거로, 기념판이나 책처럼 글에서만 쓰는 과거형입니다(단순과거).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기자가 지어낸 거예요. Piaf 의 어머니가 인터뷰 때마다 이 이야기를 했고, Piaf 도 회고록에 그대로 적었죠. 그러다 보니 전기 작가들까지 사실처럼 받아 적으면서 전설이 됐습니다. 실제 출생 기록을 보면 Piaf 는 근처 Tenon 병원에서 태어났고, Belleville 거리 72번지는 부모가 살던 집이었습니다.

3.2. Piaf 는 참새라는 뜻

Leplée 는 무대에 세운 Piaf 에게 «la môme Piaf»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파리 속어로 la môme 는 꼬마를 뜻하고 piaf 는 참새를 뜻해서, 합치면 '꼬마 참새'가 되죠. 작은 키와 가녀린 몸 때문에 지은 이름인데, 참새를 뜻하는 표준어 moineau 를 쓴 «la môme Moineau» 라는 가수가 이미 있어서 piaf 를 골랐다고 해요. 몇 년 뒤에는 «Édith Piaf» 로 이름을 바꿔 평생 썼습니다.

3.3. 사랑의 찬가와 Marcel Cerdan

Piaf 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1948년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 권투 선수 Marcel Cerdan 이었습니다. 1949년 10월 28일, Cerdan 은 뉴욕에서 공연 중이던 Piaf 를 만나러 가는 길에 비행기가 대서양의 Azores 제도에 추락해 세상을 떠났죠. 원래 배로 가려던 Cerdan 에게 비행기를 타라고 권한 사람이 Piaf 였다고 해요.

1946년 Studio Harcourt 에서 찍은 권투 선수 Marcel Cerdan 의 흑백 초상

사진: Studio Harcourt, 1946, 퍼블릭 도메인

「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는 Cerdan 이 죽은 뒤에 쓴 노래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Piaf 는 Cerdan 이 살아 있을 때 이 노래를 썼습니다.

3.4. 하루 차이로 떠난 Piaf 와 Cocteau

Piaf 는 1963년 10월 10일 남프랑스 Grasse 근처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Piaf 가 고향 파리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하려고 몰래 시신을 파리로 옮겼고, 의사는 날짜를 하루 늦춘 사망 진단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공식 기록에는 10월 11일 파리에서 숨진 것으로 남았죠. 그리고 이 소식이 알려진 지 여섯 시간 뒤, 오랜 친구였던 작가 Jean Cocteau 도 눈을 감았습니다.

1923년에 찍은 시인이자 영화감독 Jean Cocteau 의 흑백 사진

사진: Agence de presse Meurisse, 1923, 퍼블릭 도메인(프랑스 국립도서관 Gallica)

장례 행렬이 파리 Père-Lachaise 묘지로 가는 길에는 수십만 명이 나와 Piaf 를 배웅했습니다.

3.5. 영화 「인셉션」 속 Piaf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에서는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는 신호로 Piaf 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흘러나옵니다. 재밌게도 이 영화에 나오는 Marion Cotillard 는 2007년 Piaf 의 일생을 그린 영화 「La Môme」(라 비 앙 로즈)에서 Piaf 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예요.

영화에서는 꿈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서 현실에서 틀어 준 이 노래가 꿈속에서는 길게 늘어져 들립니다.

4. 대표곡으로 배우는 프랑스어

4.1. La Vie en rose (1947)

Piaf 가 1945년에 가사를 쓰고 피아니스트 Louiguy 가 곡을 붙인 노래로, 1947년에 음반으로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안아 주면 세상이 온통 장밋빛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죠.

Il me parle tout bas,

그이가 내게 나지막이 속삭이면

Je vois la vie en rose.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여요.

— Édith Piaf, 「La Vie en rose」(1947)

voir la vie en rose 는 직역하면 '인생을 장밋빛으로 보다'인데, 모든 걸 밝고 좋게 본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매사를 어둡게 보는 것은 voir tout en noir(모든 것을 검게 보다)라고 하죠. parler tout bas 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는 뜻입니다.

노래 후반부에서 행복은 절정에 이릅니다.

Des nuits d'amour à plus finir,

끝없이 이어지는 사랑의 밤들

Heureux, heureux à en mourir.

죽을 만큼 행복해요.

à plus finir 는 '끝도 없이', à en mourir 는 '죽을 만큼'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품에 안기면 걱정도 슬픔도 지워지고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는, 이 노래에서 가장 뜨거운 대목이죠.

4.2. Hymne à l'amour (1950)

Piaf 가 1949년 초 Cerdan 을 생각하며 가사를 쓰고 Marguerite Monnot 가 곡을 붙인 노래로, 1950년에 음반으로 나왔습니다. 1949년 9월 뉴욕의 카바레 Versailles 에서 처음 불렀는데, Cerdan 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 밤에도 Piaf 는 무대에 올라 이 노래를 그에게 바쳤죠. 2016년 여론조사 기관 BVA 가 조사했을 때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어 사랑 노래로 뽑혔습니다. 2024년 7월 26일 파리 올림픽 개막식 마지막에는 투병 중이던 Céline Dion 이 4년 만에 무대에 올라 에펠탑 위에서 이 노래를 불렀죠.

Peu m'importe si tu m'aimes,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Je me fous du monde entier.

온 세상이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

— Édith Piaf, 「Hymne à l'amour」(1950)

peu m'importe 는 직역하면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인데,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se foutre de… 도 '~ 따위 신경 안 쓴다'는 말이지만 꽤 거친 구어라 친한 사이에서만 쓰고, 점잖게 말할 때는 je m'en fiche 나 ça m'est égal 을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순간을 노래한 마지막 부분은 몇 달 뒤 Cerdan 이 정말로 세상을 떠나면서 더 애틋하게 남았습니다.

Si un jour la vie t'arrache à moi,

언젠가 삶이 그대를 내게서 앗아 간다 해도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

신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니까요.

arracher 는 억지로 뜯어내듯 빼앗는다는 말이라 그냥 '데려간다'보다 훨씬 아픈 표현입니다. 노래는 그대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한 뒤, 하늘에서 영원히 함께할 거라며 이 마지막 한 줄로 끝나죠.

4.3. Padam, padam… (1951)

Henri Contet 가 가사를 쓰고 Norbert Glanzberg 가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1951년 파리의 공연장 ABC 에서는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관객들이 이 노래를 다시 불러 달라고 외쳤죠. padam 은 심장이 뛰는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입니다. 노래 속 '나'는 밤낮으로 따라다니는 한 멜로디를 들을 때마다 지나간 사랑의 기억이 밀려와 심장이 'padam, padam, padam' 하고 뛴다고 노래하는데, 이 기억에는 먼저 떠난 Cerdan 도 담겼다고 알려져 있죠. 쿵·짝·짝 하는 왈츠 박자와도 맞아떨어지는 소리이고, 파리 사람들이 파리를 부르는 속어 Paname 와 소리가 비슷해서 Piaf 의 파리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Cet air qui m'obsède jour et nuit,

밤낮으로 나를 사로잡는 이 멜로디,

Cet air n'est pas né d'aujourd'hui.

이 멜로디는 오늘 생겨난 게 아니에요.

— Édith Piaf, 「Padam, padam…」(1951)

obséder 는 어떤 생각이나 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사람을 사로잡는다는 뜻입니다. ne pas être né d'aujourd'hui 는 직역하면 '오늘 태어난 게 아니다'인데,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라 오래됐다는 말입니다.

멜로디를 타고 되살아나는 옛사랑의 말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Des « je t'aime » de quatorze-juillet,

7월 14일 축제처럼 들뜬 '사랑해'

Des « toujours » qu'on achète au rabais.

헐값에 사들인 '영원히'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로, 불꽃놀이와 거리 무도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축제 분위기에 들떠 쉽게 나온 '사랑해'와 싸구려처럼 흔했던 '영원히'라는 약속들이 멜로디와 함께 떠올라 '나'의 가슴을 padam, padam 두드리는 거죠.

4.4. La Foule (1958)

아르헨티나 작곡가 Ángel Cabral 의 곡에 Michel Rivgauche 가 프랑스어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원곡은 1936년 페루 왈츠 리듬으로 만든 아르헨티나 노래 「Que nadie sepa mi sufrir」이고요. 노래 속 여자는 축제 인파에 떠밀려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춤을 추다가, 다시 밀려온 인파에 휩쓸려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말죠. 프랑스어판이 인기를 끌자 원곡도 「Amor de mis amores」라는 제목으로 다시 유행했습니다.

Emportés par la foule qui nous traîne,

우리를 끌고 가는 인파에 떠밀려

Nous entraîne,

저 멀리 휩쓸려 가며

— Édith Piaf, 「La Foule」(1958)

la foule 는 군중, 인파라는 뜻이고 emportés par… 는 emporter(휩쓸어 가다)의 과거분사로 '…에 휩쓸려'가 됩니다. traîner 는 무언가를 질질 끈다는 뜻이고 entraîner 는 끌고 간다는 뜻이죠. 일상에서는 traîner 를 '꾸물거리다'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쓰고, 대명동사 s'entraîner 는 '운동하다, 연습하다'라는 뜻으로 씁니다.

노래는 이렇게 끝납니다.

L'homme qu'elle m'avait donné

인파가 내게 데려다준 그 남자를

Et que je n'ai jamais retrouvé.

나는 끝내 다시 찾지 못했어요.

여기서 elle 은 la foule(인파)를 가리킵니다. 인파가 데려다준 사랑을 인파가 다시 빼앗아 갔고,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고백으로 노래가 끝나죠.

4.5. Non, je ne regrette rien (1960)

Charles Dumont 가 곡을 쓰고 Michel Vaucaire 가 가사를 붙인 노래인데, Piaf 는 처음 듣자마자 이 노래를 자기 곡으로 삼았습니다. 1961년에는 파산 위기에 몰린 파리의 공연장 Olympia 에서 이 노래로 공연을 이어 가며 공연장을 살려 냈죠. 녹음은 프랑스 외인부대(la Légion étrangère)에 바쳤습니다. 외인부대는 1831년 국왕 Louis-Philippe 가 외국인도 프랑스군에 들어와 싸울 수 있게 만든 프랑스 육군 부대로, 지금도 행진할 때 이 노래를 부릅니다.

Non, rien de rien,

아니, 정말 아무것도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 Édith Piaf, 「Non, je ne regrette rien」(1960)

ne… rien 은 '아무것도 ~ 않다'라는 부정이고, regretter 는 후회하다라는 뜻이라 je ne regrette rien 은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가 됩니다. 앞의 rien de rien 은 rien 을 한 번 더 겹쳐 '정말 아무것도'라고 힘주어 말하는 표현이죠.

지난 일을 모두 털어 낸 노래는 새 사랑으로 끝을 맺습니다.

Car ma vie, car mes joies,

내 삶도, 내 기쁨도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오늘, 그대와 함께 다시 시작하니까요.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오늘 만난 그대와 삶을 새로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며 노래가 끝납니다.

4.6. 이 노래들도 들어 보세요

  • Milord(1959): Georges Moustaki 가 가사를 쓴 곡으로, Piaf 의 가장 큰 히트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 L'Accordéoniste(1940): 아코디언 연주자를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로, Piaf 초기의 대표곡입니다.
  • Mon Dieu(1960): Charles Dumont 가 곡을 쓴 노래로, Piaf 는 이 노래도 Cerdan 을 그리며 불렀습니다.

Piaf 는 마흔일곱 해밖에 살지 못했지만, 거리에서 노래하던 꼬마 참새의 목소리는 지금도 영화와 광고 속에서 계속 흘러나옵니다. 다음에 「La Vie en rose」를 들으면 Belleville 거리의 작은 소녀를 떠올려 보세요.

지름길 프랑스어 블로그에 대해

지름길 프랑스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프랑스어 공부자료를 목표로 2017년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프랑스어 문법, 표현, 숙어, 속담, 사는 이야기 등을 주기적으로 포스팅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지름길 프랑스어 서버 운영비에 사용되며 더 질 좋은 글 작성에 보탬이 됩니다.

@Shortcut French

이상한 나라의 개발자

: shortcut.french@gmail.com

지름길 프랑스어 프로필 사진, 가방 2개가 의자 위에 놓여있는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