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Saint-Exupéry 의 『Le Petit Prince』

사진: Cédric Soulier, Château-Gaillard 에 있는 Stéphane Paret 의 어린 왕자와 여우 조각(2024), CC BY-SA 4.0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엔진이 고장 나 내려앉은 비행기 한 대. 마실 물은 겨우 여드레 치뿐이고 사람 사는 곳은 천 마일 밖입니다. 모래 위에서 잠든 조종사를 새벽에 깨운 건 어디선가 들려온 조그만 목소리였죠. "저기요…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한국에서는 『어린 왕자』로 더 익숙한 책입니다. 어릴 때 읽었다는 분도, 어른이 되어 다시 읽고 울었다는 분도 많죠. 600개가 넘는 언어로 옮겨진 이 책이 처음 나온 곳이 프랑스가 아니라 뉴욕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프랑스 독자는 3년을 기다려 1946년 4월에야 이 책을 받아 들었고, 올해 2026년은 프랑스에서 책이 나온 지 꼭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1. 어떤 이야기일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입니다. 그는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는데, 어른들이 하나같이 모자 그림이라고 하는 바람에 화가의 꿈을 접었죠. 그런 그에게 양을 그려 달라고 조른 아이는 집 한 채만 한 작은 별, 소행성 B 612 에서 온 어린 왕자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에서 화산을 청소하고, 별을 뒤덮으려는 바오밥나무 싹을 뽑고,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냈습니다.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노을을 본 날도 있었대요. 그러다 투정 부리는 장미 한 송이와 다투고 별을 떠나 여행길에 오릅니다. 다스릴 백성이 없는 왕, 칭찬만 듣고 싶은 허영쟁이, 별을 세며 제 것이라 우기는 사업가 같은 이상한 어른들을 거쳐 지구에서 여우를 만나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apprivoiser)는 것이 '관계를 맺는 것(créer des liens)'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서로 길들이면 너는 나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어린 왕자가 이 말에서 무엇을 깨닫는지, 그리고 조종사와 어떻게 헤어지게 되는지는 직접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결말은 아껴 둘게요.

사진: Thomas Fuhrmann, 모로코 Erg Chebbi 의 저녁(2021), CC BY-SA 4.0
2. 사막에 떨어져 본 조종사, Saint-Exupéry
Antoine de Saint-Exupéry(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 Lyon 에서 태어났습니다. 열두 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 본 뒤로 하늘에 빠졌고, 1926년 우편 비행 회사 Latécoère(나중의 Aéropostale)에 조종사로 들어갔죠. 1929년 첫 소설 『Courrier Sud』를 냈고, 아르헨티나에서 우편 항로를 열며 쓴 『Vol de nuit』(1931)로 Femina 상을 받아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진: 비행기 옆의 Antoine de Saint-Exupéry, Museo Regional Municipal «Palacio Arruabarrena» 소장
책 속 조종사의 불시착은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1935년 12월 30일, 파리에서 사이공까지 날아가는 기록에 도전하던 Saint-Exupéry 의 비행기가 리비아 사막에 떨어졌어요. 그와 정비사는 물 없이 나흘을 걸어 헤맨 끝에 베두인에게 구조됐습니다.

『Le Petit Prince』는 그가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 머물던 시기에 쓴 책입니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자 그는 미국이 전쟁에 나서도록 설득하겠다며 뉴욕으로 건너갔고, 27개월을 그곳에서 지냈죠. 책은 1943년 4월 6일 뉴욕의 출판사 Reynal & Hitchcock 에서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이 함께 나왔고, 그림도 Saint-Exupéry 가 직접 수채화로 그렸습니다.
책이 나온 1943년, 그는 북아프리카로 떠나 다시 정찰기 조종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1944년 7월 31일, Corse 에서 정찰 비행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 뒤 50년 넘게 행방을 아무도 몰랐는데, 1998년 9월 Marseille 앞바다에서 어부 Jean-Claude Bianco 의 그물에 팔찌 하나가 걸려 올라왔습니다. 팔찌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Le Petit Prince』를 낸 뉴욕 출판사의 주소가 새겨져 있었죠. 2000년에는 근처 Riou 섬 앞바다에서 그가 몰던 P-38 Lightning 의 잔해도 찾아냈지만, 왜 떨어졌는지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3.1.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S'il vous plaît… dessine-moi un mouton !
저기요…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어린 왕자의 첫마디에는 재미있는 문법 오류가 있습니다. S'il vous plaît 는 vous 를 쓰는 공손한 말인데, 바로 뒤의 dessine-moi 는 tu 에게 하는 명령문이에요. 처음 보는 어른에게 예의를 차리려다 금세 친구에게 하듯 조르는, 아이다운 말투가 한 문장에 다 담겼죠. 긍정 명령문에서는 me 대신 moi 를 동사 뒤에 붙인다는 것도 이 문장 하나로 기억해 둘 수 있습니다.
3.2. 모든 어른은 처음에 어린아이였다
Toutes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이 책은 친구 Léon Werth 에게 바친 책인데, Saint-Exupéry 는 어른에게 책을 바쳐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헌사를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Léon Werth 에게'로 고쳐 씁니다. les grandes personnes 는 '어른들'을 아이 눈높이에서 부르는 말로, 책 전체에서 어른은 늘 이렇게 불리죠. s'en souvenir 는 '그것을 기억하다'라는 뜻이고, en 이 앞의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받습니다.
3.3.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On ne voit bien qu'avec le cœur. 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우가 어린 왕자와 헤어지며 알려 주는 비밀입니다. ne … que 는 부정문처럼 생겼지만 '~만, ~해야만'이라는 제한의 뜻이라서, '마음으로만 잘 본다'가 되죠. l'essentiel 은 형용사 essentiel(본질적인)에 관사를 붙여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명사로 쓴 말입니다.
4. 원서로 읽는 『Le Petit Prince』
27개의 짧은 장으로 되어 있고 문장이 짧고 단어가 쉬워서, 프랑스어 첫 원서로 많이 권하는 책입니다. 대화가 많아 현재형과 명령문이 자주 나오고, 이야기는 주로 복합과거와 반과거로 흘러가죠. 다만 J'appris(나는 알게 되었다)처럼 단순과거가 군데군데 섞여 있으니, 단순과거의 형태를 한 번 훑어보고 읽으면 막히지 않습니다.
원서는 Gallimard 의 Folio 문고판이 가장 구하기 쉽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2015년에 저작권이 끝났지만, 프랑스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작가(mort pour la France)에게 보호 기간을 더 붙여 주는 법 때문에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어요. 그래서 Gallica 같은 곳에서 무료 원문을 볼 수는 없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는 영화도 함께 보세요. 2015년 칸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으로 상영한 Mark Osborne 감독의 애니메이션 「Le Petit Prince」는 책 속 이야기 부분을 종이 인형이 움직이는 스톱모션으로 찍어 원작 그림의 느낌을 살렸습니다. 어릴 때 읽은 분이라면 이번에는 프랑스어로, 어른의 눈으로 다시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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