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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René Descartes

'프랑스의 철학' 시리즈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René Descartes

Je pense, donc je suis.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1637)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책을 한 권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도 어디선가 들어 본 문장이죠. 라틴어 cogito, ergo sum 으로 더 유명해서 라틴어 문장인 줄 아는 분이 많은데, 이 문장이 처음 실린 곳은 1637년에 프랑스어로 쓴 책이었습니다.

이 말을 남긴 René Descartes(르네 데카르트)는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였고, 수학 시간에 그리는 좌표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어요. 철학이라고 하면 머리부터 아프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Descartes 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재밌는 일화와 함께 소개하고, 그가 남긴 문장 속 프랑스어도 살펴보겠습니다.

1. René Descartes 는 어떤 사람일까?

René Descartes 는 1596년 3월 31일 프랑스 Touraine 지방의 작은 마을 La Haye(라 에)에서 태어나 1650년 2월 11일 스웨덴 Stockholm 에서 세상을 떠난 철학자이자 수학자입니다.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의 헤이그도 La Haye 라고 부르지만, Descartes 의 고향은 프랑스 Tours 남쪽의 작은 시골 마을이에요. 당시 학교에서는 Aristote(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대로 가르쳤는데, Descartes 는 배운 것을 모두 의심하는 데서 출발해 확실한 지식을 처음부터 다시 쌓으려 했고, 그래서 오늘날 근대 철학의 문을 연 사람으로 꼽히죠.

검은 옷에 흰 칼라를 달고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René Descartes 의 초상

그림: Frans Hals, 「René Descartes 의 초상」(1647~1648), Statens Museum for Kunst(덴마크 국립미술관) 소장

수학에서는 도형을 방정식으로 다루는 해석기하학(la géométrie analytique)의 길을 열었습니다. 좌표를 프랑스어로 coordonnées cartésiennes 라고 하는데, 여기서 cartésien 은 Descartes 의 라틴어 이름 Cartesius 에서 나온 말이에요. 다만 Descartes 는 두 기준선이 꼭 직각으로 만나야 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쓰는 직각 좌표는 그 뒤에 다듬어졌는데, 그 바탕이 된 Descartes 의 발견을 기려 이름을 붙인 거죠.

x 축과 y 축이 직각으로 만나는 평면에 점 P(3, 2)와 그 점을 지나는 직선 y = x − 1 을 그린 도식. l'axe des abscisses 는 x 축, l'axe des ordonnées 는 y 축, l'origine 은 원점

2. Descartes 가 살던 시대

Descartes 가 살았던 1596년부터 1650년까지, 유럽에서는 하늘을 보는 눈과 종교, 학문의 언어가 한꺼번에 바뀌고 있었습니다.

2.1.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Descartes 가 태어나기 반세기 전인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Copernic(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래도 Descartes 가 학교에 다니던 무렵까지 대학과 교회는 지구가 우주 한가운데 가만히 있고 해와 별이 그 둘레를 돈다는 Aristote 와 Ptolémée(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가르쳤죠. 그러다 Descartes 가 La Flèche 에서 공부하던 1610년, 이탈리아의 Galilée(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목성 둘레를 도는 위성들을 찾아냈다고 발표했어요. 모든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도는 건 아니라는 증거였습니다.

교회는 1616년 Copernic 의 책을 고칠 때까지 읽지 못하게 막았고, 1633년에는 지동설을 편 Galilée 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지동설 쪽이던 Descartes 는 이 소식을 듣고 다 써 놓은 책을 서랍에 넣어 버렸는데, 이 이야기는 4.3 에 자세히 적었어요. 그 뒤 1644년 『Principia philosophiae』에서는 꾀를 냈는데, 하늘은 보이지 않는 물질이 소용돌이(le tourbillon)처럼 도는 곳이고 지구는 이 소용돌이에 실려 해 둘레를 돌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구는 자기를 둘러싼 물질에 대해서는 자리를 옮기지 않으니 엄밀히 말하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죠. 덕분에 지동설을 버리지 않고도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용돌이 이론은 18세기 중반까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결국 Isaac Newton(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에 자리를 내줬습니다. 그래도 Descartes 가 세운 운동 법칙, 곧 움직이는 물체는 막는 것이 없으면 계속 곧게 나아간다는 생각은 Newton 의 관성의 법칙으로 이어졌어요.

2.2. 종교 전쟁의 시대

16세기 유럽은 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져 싸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562년부터 종교 전쟁(les guerres de Religion)이 이어지다가, Descartes 가 두 살이던 1598년 Henri IV(앙리 4세)가 개신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준 낭트 칙령(l'édit de Nantes)을 내리면서 겨우 끝났죠. 이 Henri IV 가 1604년에 세운 학교가 바로 Descartes 가 다닌 La Flèche 예수회 학교예요. 1610년 Henri IV 가 암살되자 생전의 약속대로 그의 심장이 이 학교로 옮겨졌는데, 그때 Descartes 는 열네 살 학생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1618년 30년 전쟁(la guerre de Trente Ans)이 터졌습니다. 가톨릭 나라와 개신교 나라가 뒤엉켜 싸운 이 전쟁은 독일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Descartes 가 세상을 떠나기 겨우 두 해 전인 1648년에야 끝났어요. 3절에 나오는 Descartes 의 군대 생활도 이 무렵 일인데, 그는 개신교 나라인 네덜란드의 군대에 있다가 이듬해 가톨릭 편인 Bavière(바이에른) 공작의 군대로 옮겼습니다.

2.3.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이 시대 유럽의 학자들은 나라가 달라도 라틴어로 책을 쓰고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학교 수업도 라틴어로 했고, 대학에서는 2,000년 가까이 된 Aristote 의 철학을 정답처럼 가르쳤죠. 프랑스에서는 1635년 재상 Richelieu(리슐리외)가 Académie française(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세워, 프랑스어에 확실한 규칙을 주고 학문까지 다룰 수 있는 말로 다듬는 일을 맡겼습니다. Descartes 가 『Discours de la méthode』를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낸 것은 그로부터 두 해 뒤의 일이에요.

3. La Haye 에서 Stockholm 까지

La Haye, La Flèche, Poitiers, Breda, Ulm, Paris, Amsterdam, Stockholm 에 Descartes 가 거쳐 간 순서대로 1부터 8까지 번호를 달고, 번호마다 연도와 한 일을 적은 유럽 지도

지도 데이터: Natural Earth. 나라 경계는 지금 기준입니다

Descartes 의 아버지 Joachim 은 Bretagne 고등법원(parlement de Bretagne)의 법관이었습니다. 어머니는 Descartes 가 태어난 이듬해 5월에 세상을 떠나서 어린 René 는 La Haye 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죠. 이 마을은 1802년 그의 이름을 붙여 La Haye-Descartes 가 됐고, 1967년부터는 아예 Descartes 라는 이름을 씁니다.

덩굴 장미가 핀 담장 옆으로 흰 벽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2층 집이 길을 따라 이어진 Descartes 마을의 거리

사진: Jean-Charles Guillo, Descartes 마을에 있는 René Descartes 의 어린 시절 집(2008). 지금은 René Descartes 박물관입니다

열 살 무렵인 1606년(또는 1607년)에는 예수회가 세운 La Flèche(라 플레슈)의 학교에 들어가 1614년 무렵까지 라틴어와 그리스어 고전, 철학, 수학을 배웠습니다. Descartes 는 훗날 『Discours de la méthode』에 학교에서 배운 것 가운데 수학이 가장 좋았다고 썼는데, 근거가 확실하고 분명했기 때문이었어요. 반대로 철학은 학자마다 말이 달라서 의심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고 했죠.

목조 가옥 지붕들 너머로 큰 건물과 성당이 들어선 La Flèche 왕립 학교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펜으로 그린 풍경

그림: Étienne Martellange, 「Veüe du Collège Royal de la Flèche」(1612),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소장. Descartes 가 다니던 무렵의 학교 모습입니다

1616년에는 Poitiers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집안에서는 아버지처럼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Descartes 는 법조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고, 책 대신 「세상이라는 큰 책(le grand livre du monde)」, 그러니까 여러 곳을 다니며 직접 보고 겪은 것에서 배우겠다며 길을 떠났죠. 1618년에는 네덜란드 Breda 에서 Maurice de Nassau(마우리츠 판 나사우) 공의 군대에 들어갔는데, 이곳에서 만난 네덜란드 학자 Isaac Beeckman(이사크 베이크만)과 수학·물리 문제를 함께 풀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라틴어 필기체로 학위 받은 사람 세 명을 적은 오래된 기록부 한 쪽. 가운데 기록 왼쪽 여백에 Descartes 라는 이름이 있다

자료: 1616년 11월 Poitiers 대학의 법학 학위 기록. 가운데 기록 왼쪽에 Descartes 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1619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Bavière 공작의 군대에 들어갔고, 그해 겨울에는 평생 할 일을 정하게 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뒤 몇 해 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오가던 Descartes 는 1628년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로 건너갔고, 1649년까지 스무 해 남짓 그곳에서 지냈어요. 혼자 조용히 연구하고 싶어서 Amsterdam, Utrecht, Leiden 처럼 이 도시 저 도시로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대표작도 거의 다 이 시기에 나왔습니다.

  • 1637년 『Discours de la méthode』(방법서설):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을 다룬 논문 세 편의 머리말로 쓴 책입니다.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썼고, Leiden 에서 지은이 이름 없이 펴냈죠.
  • 1641년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성찰): 의심에서 출발해 나와 신의 존재를 차례로 증명해 가는 라틴어 책입니다. 1647년에 프랑스어 번역본 『Méditations métaphysiques』가 나왔어요.
  • 1644년 『Principia philosophiae』(철학의 원리): 자신의 철학과 자연학을 교과서처럼 정리한 라틴어 책으로, 이것도 1647년에 프랑스어로 옮겨졌습니다.
  • 1649년 『Les Passions de l'âme』(정념론): 기쁨, 슬픔, 사랑, 미움 같은 감정이 몸과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 생기는지 다룬 프랑스어 책이에요.

1649년 가을에는 스웨덴 Christine(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를 받아 Stockholm 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북쪽 나라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1650년 2월 11일, 쉰셋의 나이로 그곳에서 숨을 거뒀죠.

4. Descartes 에 얽힌 일화

4.1. 늦잠을 허락받은 학생

Descartes 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18세기 『Encyclopédie』(백과전서)의 「Cartésianisme」 항목에 따르면, La Flèche 의 학교장은 몸이 약하고 생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이 학생에게 아침에 침대에서 오래 머물러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해요. 밤새 쉬어 맑아진 머리로 아침마다 누운 채 생각을 정리하던 버릇은 평생 이어졌고, 『Encyclopédie』는 Descartes 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 바로 이 아침 시간에서 나왔다고까지 썼습니다.

C'est aux matinées qu'il passait dans son lit que nous sommes redevables de ce que son génie a produit de plus important dans la philosophie et dans les mathématiques.

그의 천재성이 철학과 수학에서 낳은 가장 중요한 것들은 그가 침대에서 보낸 아침나절 덕분이다.

— 『Encyclopédie』 「Cartésianisme」 항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좌표를 떠올렸다는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늦잠 핑계로는 좌표계 만한 게 없죠

4.2. 난롯방에서 꾼 세 가지 꿈

1619년 11월, 독일 남부 Danube(도나우) 강가의 도시 Ulm 근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구경하고 군대로 돌아가던 스물세 살의 Descartes 는 겨울이 닥치는 바람에 한 마을에 발이 묶였습니다. 말을 나눌 사람도 없고 딱히 신경 쓸 일도 없었던 그는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생각만 했는데, 그때 모습을 『Discours de la méthode』에 이렇게 적었죠.

Je demeurais tout le jour enfermé seul dans un poêle,

나는 하루 종일 난롯방에 혼자 틀어박혀 지냈는데,

où j'avais tout le loisir de m'entretenir de mes pensées.

그곳에서는 아무 방해 없이 내 생각을 마음껏 곱씹을 수 있었다.

—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1637)

le poêle 는 원래 난로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난로를 피워 데운 방을 가리킵니다. 철자가 같은 여성 명사 la poêle 는 프라이팬이니 헷갈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리고 11월 10일, Descartes 는 그날 '놀라운 학문(la science admirable)'의 기초를 찾았다는 생각에 잔뜩 들뜬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적은 Descartes 의 노트는 사라졌지만, 1691년 첫 전기를 쓴 Adrien Baillet(아드리앵 바예)가 그 노트를 보고 옮겨 적은 덕분에 그날 밤 일이 지금까지 전해지죠.

Il eut trois songes consécutifs en une seule nuit, qu'il s'imagina ne pouvoir être venus que d'en haut.

그는 하룻밤에 꿈을 세 번 잇달아 꾸었는데, 이 꿈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Adrien Baillet, 『La Vie de Monsieur Des-Cartes』(1691)

첫 번째 꿈에서 Descartes 는 유령 같은 것들을 보고 겁에 질린 채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몸에 힘이 없어 왼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겨우 걸을 수 있었는데, 창피해서 몸을 펴려 하자 거센 바람이 회오리처럼 불어와 그를 왼발로 서너 바퀴 돌려 버렸죠. 비틀거리던 그는 문이 열린 학교를 보고 그 안 성당에서 기도하려고 들어갔지만, 아는 사람에게 인사도 안 하고 지나친 게 생각나 돌아서려다 성당 쪽으로 부는 바람에 세차게 떠밀렸어요. 학교 마당에서는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N 씨를 찾아가면 받을 것이 있다고 했는데, Descartes 는 그게 외국에서 들여온 멜론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똑바로 서 있는데 자기만 구부정하게 비틀거리던 그때 잠에서 깼고, 몸이 정말로 아파서 악령(un mauvais génie)이 자기를 홀리려 한 게 아닐까 두려워했죠. 5.1 에서 볼 『Méditations』의 그 악령과 같은 말이에요.

두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잠든 Descartes 는 두 번째 꿈에서 날카롭고 요란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천둥이 친 줄 알고 놀라 깨어 보니 방 안에 불꽃이 잔뜩 흩어져 있었는데, 전에도 한밤에 깨면 가끔 겪던 일이었어요. 이번에는 철학자답게 눈을 번갈아 떴다 감았다 하며 보이는 것을 살펴본 끝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세 번째 꿈은 앞의 두 꿈과 달리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책상 위에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를 사전이 있었고, 곧이어 여러 시인의 시를 모은 『Corpus poetarum』(시인 전집)도 손에 잡혔죠. 시집을 펼치자 「Quod vitae sectabor iter ?(나는 어떤 삶의 길을 따를 것인가?)」라는 시구가 눈에 들어왔고, 모르는 남자가 나타나 「Est et non(그렇다와 아니다)」으로 시작하는 시를 내밀었어요. Descartes 가 그 시는 Ausone(아우소니우스, 4세기 로마 시인)의 작품이라며 시집에서 찾아 주려고 책장을 넘기는 사이 사전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고, 결국 책도 남자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놀랍게도 Descartes 는 잠이 깨기도 전에 이게 꿈이라고 판단하고 해몽까지 했습니다.

  • 사전: 모든 학문을 한데 모은 것
  • 시집: 철학과 지혜가 하나로 이어진 것
  • Quod vitae sectabor iter: 어떤 삶을 살지 일러 주는 지혜로운 사람의 조언
  • Est et non: 사람이 아는 것 속의 참과 거짓

그래서 진리의 영(l'Esprit de vérité)이 이 꿈으로 모든 학문의 보물 창고를 열어 주려 했다고 믿었죠. 앞의 두 꿈은 지난 삶을 돌아보라는 경고로, 천둥은 진리의 영이 자기에게 내려온 신호로, 멜론은 혼자 지내는 즐거움(les charmes de la solitude)으로 풀었고요.

Baillet 는 그날이 Saint-Martin(생마르탱) 축일 전날 밤이라 그곳 사람들이 프랑스에서처럼 흥청망청 마시는 날이었으니, Descartes 도 한잔하고 잔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Descartes 는 그날 하루 종일 정신이 말짱했고 석 달 내내 포도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고 해요. 이 밤을 지나며 Descartes 는 모든 학문을 하나의 확실한 방법으로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일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4.3. Galilée 재판과 서랍 속 원고

1633년, Descartes 는 우주와 빛을 설명한 책 『Le Monde』(세계)를 거의 다 써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로마 종교재판소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고 주장한 Galilée 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Le Monde』도 같은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에, Descartes 는 Galilée 와 같은 일을 당할까 봐 책을 내지 않기로 했죠. 이 원고는 그가 죽은 뒤인 1664년에야 세상에 나왔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추기경들과 검은 옷의 수도사들이 둘러앉은 큰 방 가운데에서 늙은 Galilée 가 탁자 앞에 서 있는 그림

그림: Joseph-Nicolas Robert-Fleury, 「Galilée devant le Saint-Office」(1847)

대신 Descartes 는 4년 뒤 자기 생각의 일부만 골라 『Discours de la méthode』와 논문 세 편으로 펴냈는데, 그마저 지은이 이름을 넣지 않았습니다.

DISCOURS DE LA METHODE 라는 큰 제목 아래 La Dioptrique, Les Météores, La Géométrie 를 함께 적고, 가운데 둥근 문양과 맨 아래 1637년 Leiden 의 Jan Maire 인쇄소를 적은 책 속표지

자료: 『Discours de la méthode』 초판 속표지(1637). 제목과 함께 실린 논문 세 편, 인쇄소는 적었지만 지은이 이름은 없습니다

4.4. 다섯 살에 떠난 딸 Francine

Descartes 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1635년 네덜란드에서 집안일을 돌보던 Helena Jans(헬레나 얀스)와의 사이에서 딸 Francine(프랑신)이 태어났고, Descartes 는 세례 기록에 아버지로 이름을 올렸어요. 한동안 셋이 함께 살기도 했는데, 딸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친척 집에 보낼 준비를 하던 1640년 9월에 Francine 은 열병으로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Descartes 는 딸을 잃고 몹시 슬퍼했죠.

4.5. 새벽 5시의 철학 수업

평생 아침잠이 많았던 Descartes 에게 마지막 겨울은 혹독했습니다. 1649년 가을 Descartes 가 Stockholm 에 도착한 뒤, 스물셋의 젊은 여왕 Christine 은 철학을 직접 배우겠다며, 이듬해 1월부터 일주일에 사흘 새벽 5시에 왕궁 도서관으로 와 달라고 했어요.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머리가 맑은 시간이 그때라는 이유였죠. 한겨울 북유럽의 새벽길을 오가던 Descartes 는 2월 1일 여왕에게 학술원 규칙을 써서 바치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 열이 오르고 폐에 염증이 생겼습니다.

기둥이 늘어선 큰 홀에 학자와 성직자들이 모여 있고, 오른쪽 붉은 탁자에서 담비 털 망토를 두른 여왕 곁에 선 Descartes 가 종이 위 도형을 짚고 있는 그림

그림: Nils Forsberg 가 Pierre-Louis Dumesnil 의 그림을 따라 그린 「Christine 여왕과 Descartes 의 토론」(1884). 18세기 화가 Dumesnil 이 상상해 그린 장면으로, 오른쪽 붉은 탁자 가운데가 Christine 여왕, 그 오른쪽에서 종이를 짚고 선 사람이 Descartes 입니다

주변에서 피를 뽑는 치료(la saignée)를 권하자 Descartes 는 한사코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Messieurs, épargnez le sang français.

여러분, 프랑스인의 피를 아끼시오.

— 『Encyclopédie』 「Cartésianisme」 항목

결국 치료를 받아들였지만 이미 늦었고, Descartes 는 2월 1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늦잠을 자던 철학자에게 스웨덴 한겨울의 새벽 수업이 너무 가혹했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설명이에요.

4.6. 따로 잠든 머리와 몸

Descartes 는 처음에 Stockholm 에 묻혔습니다. 그 묘지는 지금 Adolf Fredriks kyrka(아돌프 프레드리크 교회)의 묘지가 됐고, 교회 안에는 18세기에 스웨덴 왕 Gustav III(구스타브 3세)의 뜻으로 세운 Descartes 기념비가 남아 있어요.

흰 교회 기둥에 붙은 검은 대리석 비석 위에 Descartes 의 금빛 얼굴 부조가 있고, 아래에는 지구 위에 앉은 날개 달린 인물을 검은 조각으로 새긴 기념비

사진: Antoine Rex, Stockholm Adolf Fredriks kyrka 의 Descartes 기념비(2025)

유해는 1667년 프랑스로 돌아왔는데, 옮기려고 무덤을 열었을 때 두개골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몸은 몇 번 자리를 옮긴 끝에 1819년 파리 Saint-Germain-des-Prés 성당에 다시 묻혔고, 사라진 두개골은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쳐 경매에 나왔다가 1821년 스웨덴 화학자 Berzelius(베르셀리우스)가 프랑스 박물학자 Cuvier(퀴비에)에게 넘기면서 파리로 왔죠. 두개골에 새겨진 글귀를 보면, 무덤을 열 때 이를 지휘한 근위대장이 몰래 빼돌린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두개골은 파리 Musée de l'Homme 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 생각한 철학자라서일까요, Descartes 의 머리와 몸은 지금도 파리의 서로 다른 곳에서 쉬고 있네요.

성당 예배당 벽에 뾰족한 아치 모양의 검은 대리석 비석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금빛 라틴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사진: Pierre Poschadel, Saint-Germain-des-Prés 성당 Saint-Benoît 예배당의 비석(2014), CC BY-SA 3.0. 가운데가 Descartes 의 비석입니다

5. Descartes 의 생각

5.1. 방법적 회의(le doute méthodique)

Descartes 는 확실한 지식을 찾으려면 먼저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거짓으로 치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방법적 회의(le doute méthodique)라고 하죠. 감각은 가끔 우리를 속이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없고, 사람은 아주 쉬운 기하학 문제에서도 실수하니 머릿속 추론도 장담할 수 없어요. 게다가 깨어 있을 때 하는 생각은 꿈속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Méditations』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아주 힘세고 교활한 악령(un mauvais génie)이 나를 줄곧 속이고 있다고 가정하기까지 했죠.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는 동안에도 의심하고 있는 나는 있어야 합니다. 악령이 나를 속인다 해도 속으려면 내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Descartes 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아무리 의심해도 흔들리지 않는 첫 번째 진리로 삼았습니다. Descartes 에게 의심은 목적이 아니라 확실한 지식에 이르려고 거쳐 가는 단계였던 거예요.

방법적 회의의 단계. 감각은 가끔 속이고, 추론은 쉬운 문제에서도 틀리고, 깨어 있을 때의 생각은 꿈속에서도 할 수 있고, 악령이 나를 속일 수도 있어 모두 의심하지만, 의심하는 나는 남는다. Je pense, donc je suis.

이 생각에는 당시에도 반론이 많았습니다. 철학자 Pierre Gassendi(피에르 가상디)는 예전 지식을 '불확실하다'고만 해 두면 될 것을 왜 굳이 전부 '거짓'으로 여기느냐고 물었는데, 그건 낡은 편견을 버리는 게 아니라 새 편견을 하나 들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이었죠. 또 문장 가운데에 donc(그러므로)이 있어서 '생각한다'에서 '존재한다'를 끌어낸 추론처럼 보이지만, Descartes 는 반론에 답한 글에서 이것은 삼단논법처럼 단계를 밟아 끌어낸 결론이 아니라, 생각하는 순간 곧바로 알아차리는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5.2. 생각하는 나와 몸, 이원론(le dualisme)

그럼 이렇게 확인한 '나'는 무엇일까요? Descartes 는 몸이 없다고 상상할 수는 있어도 생각하는 내가 없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고 보고, 나는 생각하는 것(une chose qui pense)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몸을 비롯한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고 크기와 모양을 가진 것(une chose étendue)으로 봤죠. 정신과 물체를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실체로 나누는 생각을 데카르트의 이원론(le dualisme cartésien)이라고 합니다.

정신(l'âme)은 생각하는 것(une chose qui pense)으로 의심하고 이해하고 바라며 크기도 모양도 없고, 물체(le corps)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une chose étendue)으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정교한 기계다. 둘 사이를 뇌 한가운데의 송과선(la glande pinéale)이 잇는다고 Descartes 는 봤다

Descartes 에게 몸은 정교한 기계였어요. 동물도 생각하는 정신 없이 움직이는 기계로 봤는데, 이 동물 기계(l'animal-machine) 이론은 나중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기계인 몸과 생각하는 정신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까요? Descartes 는 『Les Passions de l'âme』에서 뇌 한가운데 있는 송과선(la glande pinéale)이 둘을 잇는다고 답했지만, 몸과 마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지금도 철학과 과학이 함께 풀어 가는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옆모습의 사람이 두 눈으로 화살표 A, B, C 를 보고, 눈에서 뇌 속 작은 샘까지 선이 이어지며, 사람이 손가락을 들어 화살표를 가리키는 목판화

그림: Descartes, 『L'Homme』(1664)의 그림. 두 눈에 들어온 화살표의 모습이 뇌 속 송과선(H)에 모이고, 그에 따라 손가락이 화살표를 가리키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5.3. 방법의 네 가지 규칙

책 제목의 '방법'은 이성을 제대로 써서 참을 찾아내는 요령을 말합니다. Descartes 는 규칙을 잔뜩 늘어놓기보다 네 가지만 철저히 지키기로 했어요.

  1. 명증(l'évidence): 분명하게 참이라고 알지 못하는 것은 절대 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두르거나 선입견에 끌려 판단하지 않는다.
  2. 분석(l'analyse): 어려운 문제는 풀기 좋게 될 수 있는 대로 잘게 나눈다.
  3. 종합(la synthèse):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 한 계단씩 복잡한 것으로 올라간다.
  4. 열거(le dénombrement): 빠뜨린 것이 없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헤아리고 다시 훑어본다.

방법의 네 가지 규칙. 1 명증(l'évidence) 분명히 참이라고 아는 것만 받아들인다, 2 분석(l'analyse) 어려운 문제는 잘게 나눈다, 3 종합(la synthèse) 가장 단순한 것부터 한 계단씩 올라간다, 4 열거(le dénombrement)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훑는다

이 규칙은 프랑스어 공부에도 그대로 써먹을 수 있죠. 긴 문장은 잘게 나눠 읽고, 쉬운 문법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식으로요.

6. 명문장으로 배우는 프랑스어

Descartes 의 문장은 17세기 프랑스어라 원문 철자가 지금과 조금 다릅니다. 이 글의 인용은 모두 요즘 철자로 옮겼어요.

6.1. Le bon sens est la chose du monde la mieux partagée

『Discours de la méthode』는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Le bon sens est la chose du monde la mieux partagée ; car chacun pense en être si bien pourvu,

양식(良識)은 세상에서 가장 고르게 나뉜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넉넉히 갖췄다고 생각해서

que ceux même qui sont les plus difficiles à contenter en toute autre chose n'ont point coutume d'en désirer plus qu'ils en ont.

다른 일에는 좀처럼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도 양식만큼은 가진 것보다 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1637)

le bon sens 는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힘인데, Descartes 는 바로 뒤에서 이것을 이성(la raison)이라고도 부릅니다. la mieux partagée 는 bien partagé(잘 나뉜)의 최상급이라 '가장 고르게 나뉜'이 되고, 최상급 앞에 끼어든 du monde 는 '세상에서'라는 뜻이에요. être pourvu de 는 '~을 갖추다'입니다.

얼핏 들으면 '누구나 자기 판단력만큼은 남부럽지 않다고 믿는다'며 사람들을 꼬집는 농담 같지만, Descartes 는 이 말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믿는데 모두가 착각하고 있을 리는 없으니,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힘은 원래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다고 본 거죠. 그런데도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건 누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같은 문제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따져 보고 서로 다른 것을 살펴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건 타고난 힘이 아니라 그 힘을 쓰는 방식이라서, 곧이어 이렇게 덧붙였어요.

Car ce n'est pas assez d'avoir l'esprit bon, mais le principal est de l'appliquer bien.

좋은 머리를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머리를 잘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ce n'est pas assez de + 동사원형 은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le principal est de + 동사원형 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옮기면 Il ne suffit pas d'avoir l'esprit bon, l'essentiel est de bien l'appliquer 쯤 되죠.

6.2. Je pense, donc je suis

이 유명한 문장은 『Discours de la méthode』 4부에 이렇게 나옵니다.

Pendant que je voulais ainsi penser que tout était faux, il fallait nécessairement que moi qui le pensais fusse quelque chose.

이렇게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려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무언가여야 했다.

Cette vérité, je pense, donc je suis, était si ferme et si assurée que toutes les plus extravagantes suppositions des sceptiques n'étaient pas capables de l'ébranler.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진리는 아주 굳고 확실해서, 회의론자들의 어떤 터무니없는 가정도 이를 흔들 수 없었다.

—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1637)

donc 은 앞의 말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그러므로'예요. 원칙적으로는 문장 첫머리나 모음 앞에서만 끝의 c 를 소리 내지만, 요즘은 어디서나 c 를 살려 dɔ̃k 로 읽는 사람이 많습니다. si … que ~ 는 '너무 …해서 ~하다'라는 뜻이고(si ferme et si assurée que …), fusse 는 être 의 접속법 반과거입니다. 17세기에는 il fallait que 처럼 과거형 주절 뒤에 접속법 반과거를 썼지만, 요즘은 글에서도 거의 쓰지 않고 접속법 현재로 바꿔 il fallait que je sois quelque chose 라고 하죠.

6.3. Changer mes désirs plutôt que l'ordre du monde

모든 것을 의심하는 동안에도 하루하루 살아가려면 따를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Descartes 는 확실한 답을 찾을 때까지 지킬 임시 도덕(la morale par provision)을 세웠는데,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동안 머물 집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고 했죠. 그 세 번째 규칙이 이것입니다.

Ma troisième maxime était de tâcher toujours plutôt à me vaincre que la fortune, et à changer mes désirs que l'ordre du monde.

나의 세 번째 규칙은 운명보다는 나 자신을 이기려고, 세상의 질서보다는 내 욕망을 바꾸려고 늘 애쓰는 것이었다.

—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1637)

plutôt A que B 는 'B 보다는 차라리 A'라는 뜻입니다. la fortune 은 요즘 faire fortune(큰돈을 벌다)처럼 재산을 뜻할 때가 많지만, 여기서는 문어체에서 쓰는 '운명, 운'이에요. tâcher à + 동사원형 도 지금은 문학 작품에서나 보이는 말투라서, 평소에는 tâcher de + 동사원형(~하려고 애쓰다)으로 씁니다.

Descartes 는 이 규칙 뒤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우리 생각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바꿀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내 마음을 바꾸라는 말이라서, 철학을 몰라도 고개가 끄덕여지죠.

6.4. Si j'écris en français

학자들이 책을 라틴어로 쓰던 시절이라, 『Discours de la méthode』를 프랑스어로 쓴 것은 꽤 과감한 선택이었습니다. Descartes 는 책 끝에서 그 까닭을 직접 밝혔어요.

Et si j'écris en français, qui est la langue de mon pays, plutôt qu'en latin, qui est celle de mes précepteurs,

내가 스승들의 말인 라틴어가 아니라 내 나라의 말인 프랑스어로 쓰는 것은,

c'est à cause que j'espère que ceux qui ne se servent que de leur raison naturelle toute pure jugeront mieux de mes opinions que ceux qui ne croient qu'aux livres anciens.

타고난 이성 하나만 쓰는 사람들이 옛 책만 믿는 사람들보다 내 생각을 더 바르게 판단해 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 René 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1637)

c'est à cause que 는 지금의 c'est parce que(~이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옛 표현입니다. celle de 는 앞에 나온 la langue 를 받는 지시대명사이고, ne … que 는 '~만'이라는 뜻이에요(ne se servent que de …, ne croient qu'aux …).

Descartes 는 편지에서도 여성들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이 책을 프랑스어로 썼다고 말했습니다. 라틴어를 배울 기회가 없던 사람에게도 생각하는 힘은 똑같이 있다고 믿었던 거죠. 6.1 의 첫 문장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예요.

6.5. 오늘의 프랑스어 속 cartésien

Descartes 의 이름은 지금 프랑스어에 형용사로도 남아 있습니다. coordonnées cartésiennes(데카르트 좌표)의 cartésien 은 'Descartes 의'라는 뜻이지만, 사람에게 쓰면 이성적이고 엄밀하게 따지는, 조금은 딱딱하다 싶을 만큼 논리적인 사람을 가리켜요.

Tu crois aux horoscopes ?

너 별자리 운세 믿어?

Pas du tout. Je suis trop cartésien pour ça.

전혀. 난 그런 걸 믿기엔 너무 이성적이야.

Elle a tout noté dans un tableau avant de choisir son appartement.

걔는 집을 고르기 전에 하나하나 다 표로 정리했대.

Ça ne m'étonne pas, elle est très cartésienne.

놀랍지도 않아, 걔는 워낙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이잖아.

Descartes 의 몸은 지금 파리 Saint-Germain-des-Prés 성당에 잠들어 있습니다. 생제르맹 거리를 걷다 성당에 들르게 되면, 아침마다 침대에서 생각을 정리하던 이 철학자에게 인사를 건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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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 프랑스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프랑스어 공부자료를 목표로 2017년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프랑스어 문법, 표현, 숙어, 속담, 사는 이야기 등을 주기적으로 포스팅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지름길 프랑스어 서버 운영비에 사용되며 더 질 좋은 글 작성에 보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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