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t 가 자란 항구 도시 Le Havre

사진: FrDr, 요트 항구 너머로 보이는 Saint-Joseph 성당 탑(2022), CC BY-SA 4.0
아침 햇살이 Le Havre(르 아브흐)의 곧은 대로를 비추면, 길을 따라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들이 분홍빛이 도는 베이지로 물들었다가 해가 기울수록 금빛 갈색으로 짙어집니다. 도심 곳곳에서 107m 높이의 Saint-Joseph 성당 탑이 올려다보이고, 큰 배가 항구를 떠날 때면 뱃고동이 세 번 울리죠.
이 건물들은 모두 1944년 폭격으로 무너진 도심 위에 건축가 Auguste Perret 가 한 칸이 6.24m 인 격자 하나에 맞춰 다시 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지은 도시는 20세기 도시 계획의 대표작으로 꼽혀, 2005년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어요.
도심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자갈 해변과 요트 항구가 펼쳐지고, Claude Monet 가 「인상, 해돋이」를 그린 곳도 바로 이 항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Le Havre 의 볼거리와 먹을거리, 가기 좋은 때, 그리고 Le Havre 로 가는 길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Le Havre 는 어떤 곳일까?

지도 데이터: IGN Admin Express, Natural Earth
파리를 지나 굽이굽이 흘러온 Seine 강은 Le Havre 앞에서 마침내 바다를 만납니다. 그 하구 북쪽 기슭의 항구 도시 Le Havre 는 1517년 François Ier(프랑수아 1세)가 이곳에 새 항구를 짓게 하면서 생겨나, 2017년에는 도시와 항구가 생긴 지 500년을 맞아 여름 내내 큰 축제를 열었죠. 지금도 프랑스에서 컨테이너를 가장 많이 처리하는 항구이고, 영국 Portsmouth 를 오가는 여객선과 커다란 크루즈선도 이곳에 닿습니다.

사진: Ville du Havre, 하늘에서 본 Le Havre 도심과 요트 항구(2014), CC BY-SA 4.0
Le Havre 라는 이름은 '배를 대는 항구'를 뜻하는 옛말 havre 에서 왔습니다. havre 는 중세 네덜란드어 havene 에서 들어온 말로 독일어 Hafen(항구)과 뿌리가 같은데, 요즘은 un havre de paix(평화로운 안식처)처럼 '피난처'라는 뜻으로 더 자주 써요.
비행기가 대서양을 건너기 전, New York 에서 새 삶을 꿈꾸던 사람들은 이 항구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1864년 Compagnie Générale Transatlantique 가 Le Havre 와 New York 을 잇는 정기 여객선 항로를 열었는데, 1935년 이 항로에 나선 Normandie 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고 첫 항해에서 대서양 횡단 최고 속도 기록에 주는 Blue Riband 까지 받았죠. 110년 동안 이어진 이 항로는 비행기에 밀려 1974년 여객선 France 를 끝으로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여름이면 큰 크루즈선이 이 항구에 들릅니다.

사진: Christian Kortum, Le Havre 항구로 들어오는 대서양 여객선 La Bourgogne(1890년대), CC BY 2.0
이 도시의 운명을 바꾼 건 1944년 9월이었습니다. 2차 대전 막바지에 독일군이 지키던 이 항구를 되찾으려고 연합군이 폭격을 퍼부었는데, 그 바람에 도심이 거의 다 무너지고 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어요. 전쟁이 끝나자 건축가 Auguste Perret(오귀스트 뻬헤)가 이끄는 설계팀이 1945년부터 1964년까지 133헥타르에 이르는 도심을 새로 지었습니다. 옛 모습을 되살리지 않고 완전히 새 도시를 지은 이 방식은 오랫동안 논란이 됐지만, 유네스코는 2005년 이곳을 「Le Havre, la ville reconstruite par Auguste Perret」(Auguste Perret 가 다시 지은 도시 Le Havre)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올렸죠.

2.1. Perret 가 다시 지은 도심
Perret 는 콘크리트를 돌처럼 다룬 건축가로, 한 칸이 6.24m 인 격자(trame)를 되풀이하며 그 위에 공장에서 미리 만든 부재를 짜 맞춰 도시 전체를 지었습니다. 언뜻 보면 다 같은 회색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콘크리트마다 표정이 다릅니다. 섞은 재료와 표면을 다듬은 방식(갈기, 쪼기, 씻어 내기)에 따라 건물마다 빛깔과 결이 달라서, 기둥 머리와 건물 입구, 난간 무늬를 하나씩 들여다보며 걷는 재미가 있어요. 도심 한가운데 꽃밭 너머로 높은 탑을 세운 시청(Hôtel de Ville)도 Perret 의 작품인데, 1952년부터 본관을 짓던 Perret 가 세상을 떠난 뒤 건축가 Jacques Tournant(자크 뚜흐낭)이 1958년에 탑을 마저 올렸습니다.

사진: Alexandre Prevot, 꽃밭 너머의 Le Havre 시청(2019), CC BY-SA 2.0
이 도시를 이해하려면 Appartement témoin Perret(뻬헤 견본 아파트)부터 가 보는 게 좋습니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시민들을 위해 지은 아파트 한 채를 시가 2005년에 사들여 1950년대 가구와 살림살이로 꾸며 둔 곳인데, 붙박이 부엌과 욕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세탁기까지 갖춘 집이라 전쟁 뒤 프랑스 사람들이 꿈꾸던 새 살림을 엿볼 수 있죠. 안내원과 함께하는 무료 방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어서 미리 예약해야 하는데, 방문 시간과 예약 방법은 관광청 안내 페이지에서 볼 수 있어요.

2.2. Église Saint-Joseph
Perret 의 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려고 지은 Saint-Joseph 성당입니다. 107m 높이로 솟은 탑은 바다에서도 보이고, 생김새가 뉴욕의 마천루를 닮았다는 말을 듣죠.

사진: Fred Romero, 하늘로 솟은 Saint-Joseph 성당 탑, CC BY 2.0
겉은 회색 콘크리트뿐이라 밋밋해 보여도 안에 들어가 탑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여덟 면의 탑 벽을 유리 장인 Marguerite Huré(마흐그리뜨 위헤)가 만든 색유리 12,768조각이 빼곡히 채우고 있어서, 해가 비치는 날이면 색색의 빛이 성당 안을 물들이거든요. 입장은 무료예요.

사진: 왼쪽 Orgelputzer, 탑 아래에서 본 성당 안(2018), CC BY-SA 4.0 · 오른쪽 François Goglins, 밤의 Saint-Joseph 성당(2012), CC BY-SA 3.0
2.3. 자갈 해변
도심에서 800m 만 걸으면 닿는 Le Havre 해변은 모래 대신 둥근 자갈이 깔린 자갈 해변(plage de galets)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해변을 따라 늘어선 작은 오두막(cabanes)과 식당이 문을 열고, 카누와 패들보드,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여요.

사진: Gil Pivert,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Le Havre 해변(2012), CC BY 2.0
자갈 위에 앉아 수평선을 향해 멀어지는 큰 배를 바라보는 것도 이곳의 즐거움인데, 배가 항구를 나설 때면 항구 감시탑(la Vigie)이 뱃고동을 세 번 울려 배웅합니다.

사진: Ville du Havre, 크루즈선이 지나가는 여름 해변(2015), CC BY-SA 4.0
Le Havre 해변은 서쪽 바다를 보고 있어서, 저녁이면 해가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다 쪽으로 난 큰길 끝에 문처럼 마주 선 두 건물, Porte Océane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도 볼 만하죠.

사진: Philippe Alès, Le Havre 해변의 해 질 녘(2017), CC BY-SA 4.0
2.4. Jardins suspendus
해변을 따라 난 산책로는 '르 아브흐의 니스(le Nice havrais)'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으면 바닷가 언덕에 하얀 집들이 층층이 들어선 바로 옆 마을 Sainte-Adresse(쌩따드헤스)로 이어집니다.

사진: isamiga76, Sainte-Adresse 의 해안 산책로(2016), CC BY 2.0
이 마을 언덕 위에는 대포 대신 꽃과 나무가 자리 잡은 옛 요새, Jardins suspendus(공중 정원)가 있습니다. Sainte-Adresse 요새 터에 2008년 문을 연 정원인데, 성벽 위 산책로에 오르면 바다와 항구, Seine 하구, 아래쪽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죠. 옛 보루 네 곳은 세계를 누빈 식물학자들이 들여온 식물로 꾸민 주제 정원이 됐고, 가운데 마당에는 온실이 있습니다. 정원은 입장료 없이 드나들 수 있고, 온실만 2유로를 따로 받아요.

사진: Frédéric Bisson, Jardins suspendus 의 잔디밭과 온실(2013), CC BY 2.0
2.5. MuMa 와 Monet 의 항구
항구 입구를 마주 보고 선 MuMa(Musée d'art moderne André Malraux)는 유리와 철로 지어, 바닷가의 햇빛이 전시실 안까지 환하게 들어오는 미술관입니다. 1961년 André Malraux(앙드레 말로)가 문을 연, 전쟁 뒤 프랑스에서 처음 지은 큰 미술관이고, 인상주의 그림은 파리 Musée d'Orsay 다음으로 많이 가지고 있어요. Monet 에게 밖에서 그리는 법을 가르친 Eugène Boudin(외젠 부댕)의 작업실에 남아 있던 그림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어서 Boudin 의 바다 그림을 실컷 볼 수 있고, Le Havre 에서 자란 Raoul Dufy(하울 뒤피)의 그림도 있죠.

사진: Patrick, MuMa 에 걸린 Eugène Boudin 의 그림들, CC BY-SA 2.0
Dufy 는 고향의 항구를 밝은 원색으로 즐겨 그렸는데, 깃발을 줄줄이 내건 요트가 부두에 매인 축제날의 Le Havre 도 그의 붓끝에서 경쾌하게 살아났습니다.

MuMa 에서 항구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Monet 가 「Impression, soleil levant」을 그린 Quai de Southampton 이 나옵니다. 당시 Grand Quai 라고 불린 이 부두의 호텔 방에서 동쪽 항구를 내려다보며 그렸는데, 그 호텔은 1944년 폭격 때 사라졌지만, 항구 위로 해가 떠오르는 풍경만은 그대로예요.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낳은 Claude Monet 글에 자세히 적었습니다.

사진: Alexandre Prevot, 오늘날의 Quai de Southampton(2021), CC BY-SA 4.0

그림: Claude Monet, 「Impression, soleil levant」(1872), Musée Marmottan Monet 소장
Monet 서거 100주년인 2026년에는 그 자리 가까이에 Guillaume Aubry(기욤 오브히)의 상설 작품 「Sur le motif」가 세워졌습니다. 잠망경처럼 생긴 7.14m 높이 기둥 끝의 둥근 거울이 호텔 2층 발코니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던 Monet 의 눈높이에 달려 있어서, 거울에 비친 오늘의 항구를 그림과 견줘 볼 수 있죠. 같은 부두에는 500주년이던 2017년 Vincent Ganivet(뱅상 가니베)가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두 개의 아치 「Catene de containers」도 서 있어서, 항구 도시다운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습니다.
3.1. 가을이 제철인 coquille Saint-Jacques
Le Havre 앞바다인 Seine 만(la baie de Seine)은 세계에서 가리비(coquille Saint-Jacques)가 가장 많이 나는 바다로 꼽힙니다. Le Havre 어부들은 10월부터 12월까지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바닥을 긁는 그물(drague)로 가리비를 거두는데,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가 가리비를 먹기 좋은 때예요. 한때 줄어들던 가리비를 지키려고 30년 동안 조업 시간과 잡는 크기를 엄격히 정해 온 덕분에, 2025년에는 지속 가능한 어업에 주는 MSC 인증도 받았죠. 예전에는 베샤멜 소스를 듬뿍 얹어 먹었지만, 요즘 식당에서는 살짝만 익히거나 얇게 저며 카르파초로 내서 바다의 단맛을 그대로 살립니다. coquille 는 조개껍데기를 뜻하는 말이라, 껍데기에서 나온다는 sortir de sa coquille는 내성적이던 사람이 활발해진다는 뜻으로 쓰여요.

사진: Ralph Daily, 겉만 노릇하게 구운 가리비(2013), CC BY 2.0
3.2. 어시장과 노르망디의 먹을거리
바다 냄새를 따라 Saint-François 구역 Quai de l'Île 로 가면 어시장(marché aux poissons)이 나옵니다. Le Havre 사람들이 le p’tit port(작은 항구)라고 부르는 이곳에서는 어부들이 그날 잡은 농어(bar), 가자미(sole), 고등어(maquereau), 골뱅이(bulot) 같은 해산물을 직접 팔고, 선원의 아내들이 요리법까지 알려 주죠.

사진: isamiga76, Le Havre 어항에 정박한 어선들(2009), CC BY 2.0
식당에서는 굴과 새우, 골뱅이를 얼음 위에 푸짐하게 담아 내는 해산물 모둠(plateau de fruits de mer)을 시켜 보세요.

사진: Benreis, 굴과 새우, 골뱅이를 담은 해산물 모둠(2024), CC BY-SA 4.0
노르망디는 사과와 우유의 고장이기도 해서, 사과로 빚은 술 cidre(시드흐)와 사과 브랜디 calvados, 노르망디에서 살균하지 않은 소젖으로 만드는 치즈 Camembert de Normandie, 쌀을 우유에 넣고 계피를 뿌려 오븐에서 오래 구운 디저트 teurgoule 도 맛볼 만합니다. 도심의 Halles centrales(중앙 시장)에 가면 이런 노르망디 먹을거리를 한곳에서 살 수 있어요.
4. Le Havre 에 가기 좋은 때
해가 길어지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Le Havre 의 바닷가가 가장 북적입니다. 특히 6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는 2017년 500주년 축제에서 시작된 Un Été au Havre(르 아브흐의 여름)가 열려서, 해마다 새 현대미술 작품이 거리와 부두 곳곳에 놓이죠. 4월부터 10월까지는 MuMa 와 항구 유람선, Étretat 의 몇몇 볼거리를 무료로 드나드는 Pass Tourisme Le Havre-Étretat 도 팝니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과 겨울에는 가리비가 제철을 맞습니다. 홀수 해 가을에는 Le Havre 에서 대서양 건너편까지 가는 요트 경주 Transat Café L'Or(옛 이름 Transat Jacques Vabre)도 열리는데, 30년 동안 이 도시에서 출발해 온 경주라 출발 전 열흘쯤 부두에 경주 요트가 늘어서고 출발 마을이 꾸려져요. 날씨가 쌀쌀해도 MuMa 와 Saint-Joseph 성당처럼 안에서 볼 곳이 많아요.

사진: Philippe Alès, 출발을 앞두고 부두에 늘어선 Transat Jacques Vabre 경주 요트(2015), CC BY-SA 4.0
5. Le Havre 로 가는 길
파리에서 Le Havre 까지는 기차로 가는 게 가장 편합니다. Paris Saint-Lazare 역에서 노르망디 지역 열차 Nomad 를 타면 2시간에서 2시간 20분쯤 걸리는데, 하루 16편 안팎 가운데 갈아타지 않는 직행이 많아요. 가는 길에 Rouen 을 지나니 두 도시를 묶어 여행해도 좋습니다. Le Havre 역에 내려 역 앞에서 트램 A 선을 타면 종점 La Plage 가 바로 바닷가예요.
자동차로는 A13 고속도로를 타고 195km 를 달리면 됩니다. Honfleur(옹플뢰흐, 17km)나 Étretat(에트흐타, 30km) 같은 근처 바닷가 마을까지 둘러보려면 차가 편하지만, Étretat 까지는 버스도 다녀요. 렌터카를 빌릴 생각이라면 한국 운전면허로 프랑스에서 운전하는 방법과 프랑스에서 운전할 때 주의해야 할 규칙을 먼저 읽어 두세요.

기차든 차든 파리에서 하루면 충분하니, 금빛으로 물드는 콘크리트 도시와 바다를 보러 Le Havre 에 한번 가 보는 건 어떨까요?
지름길 프랑스어 블로그에 대해
지름길 프랑스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프랑스어 공부자료를 목표로 2017년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프랑스어 문법, 표현, 숙어, 속담, 사는 이야기 등을 주기적으로 포스팅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지름길 프랑스어 서버 운영비에 사용되며 더 질 좋은 글 작성에 보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