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족이 로마 사람이 되기까지, 갈로-로마 시대

Nîmes 북동쪽 Gardon 강 위로 아치를 3층으로 쌓아 올린 돌다리가 서 있습니다. 높이가 48.77m 나 되는 이 다리는 1세기 중반 Uzès 근처의 샘물을 50km 떨어진 도시 Nemausus(지금의 Nîmes)까지 끌어오던 수도교(aqueduc)의 일부인데, 프랑스 사람들은 Pont du Gard(퐁 뒤 가르)라고 부르죠. Vercingétorix 가 Alésia 에서 항복한 지 100년쯤 지난 골 지방(la Gaule)의 도시가 이런 물길을 놓았습니다.
Vercingétorix가 진 뒤 골 사람들은 로마식 도시에 살고, 로마의 신전에 제사를 지내고, 라틴어로 말하게 됩니다. 프랑스 역사에서는 이 시대를 갈로-로마(gallo-romain)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번에는 골족이 어떻게 로마 사람이 되어 갔고 그 흔적이 지금 프랑스 어디에 남아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갈로-로마라는 말
gallo-romain 은 gallo-(골)과 romain(로마)을 이은 말로, 로마가 정복한 뒤의 골 지방과 그곳에 살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프랑스는 그 시기를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로 잡고, 이 말이 처음 쓰인 곳으로 1833년 역사가 Jules Michelet(쥘 미슐레)의 『Histoire de France』를 듭니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 아니라 19세기 역사가들이 붙인 이름이죠.
기원전 2세기부터라고 하는 것은 César 가 오기 전부터 골 남쪽이 이미 로마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기원전 121년 지중해 쪽 골에 속주를 세웠고 기원전 118년에는 Narbo Martius(지금의 Narbonne)에 식민시를 두었어요. César 는 『갈리아 전기』에서 이곳을 그냥 '속주(provincia)'라고 불렀고, 1세기의 로마 학자 Pline l'Ancien(대 플리니우스)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breviterque Italia verius quam provincia.
한마디로 속주라기보다 이탈리아라고 하는 편이 맞다.
2. 네 개의 속주와 Lugdunum

지도 데이터: Natural Earth. 나라 경계는 지금 기준이고 속주 경계는 그리지 않았습니다
César 가 정복한 땅을 정리한 사람은 첫 황제 Auguste(아우구스투스)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27년 Narbonne 에서 회의를 열고 골 전체의 인구를 조사하게 했고, 골을 Narbonensis·Aquitania·Lugdunensis·Belgica 네 속주로 나눴어요. 오래전부터 로마 땅이던 Narbonensis 를 빼고 César 가 정복한 나머지 셋을 '세 골(les Trois Gaule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 Lugdunensis 의 수도는 Saône 강과 Rhône 강이 만나는 언덕 위의 Lugdunum(지금의 Lyon)이었습니다. 기원전 43년 골 총독 Lucius Munatius Plancus 가 원로원의 명령으로 세운 식민시로, 여러 속주의 행정을 함께 맡고 화폐도 찍었죠. 로마 장군 Agrippa(아그리파)는 골의 큰길을 모두 이곳에서 시작했어요. 그리스 지리학자 Strabon(스트라본)에 따르면 길은 넷이었는데, 하나는 대서양 쪽 Aquitania 로, 하나는 Rhin 강으로, 하나는 북쪽 바다로, 하나는 지중해의 Narbonne 와 Marseille 쪽으로 뻗었죠.

사진: Pymouss, Lyon 의 Fourvière 고대 극장, CC BY-SA 4.0
기원전 12년에는 이 도시에 세 골의 성소(le sanctuaire des Trois Gaules)가 들어섰습니다. Rome 과 Auguste 를 모시는 제단에는 골 부족 60곳의 이름이 새겨졌고, 해마다 부족 대표들이 모여 축제를 열고 회의를 했어요. 첫 제사장은 C. Iulius Vercondaridubnus 라는 Aedui(Éduens)족 사람이었는데, 앞은 로마식이고 뒤는 골식인 이름부터가 이 시대를 잘 보여 주죠. 훗날 황제가 되는 Claude(클라우디우스)도 기원전 10년 이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3. 골 땅에 들어선 로마식 도시
로마는 정복한 땅에 길부터 냈습니다. 지중해 쪽 골에는 이미 기원전 121~118년 무렵 Via Domitia(도미티우스 길)가 놓였고, 이 길을 낸 Domitius Ahenobarbus 의 이름을 새긴 이정표(borne milliaire)가 1949년 Narbonne 근처에서 나왔어요.

사진: Daniel Villafruela, Ambrussum 에 남은 Via Domitia, CC BY-SA 3.0
길을 따라 들어선 도시에는 신전이 선 광장(forum), 극장, 원형 경기장(amphithéâtre), 목욕탕(thermes), 물을 대는 수도교가 갖춰졌습니다. Nîmes 에서는 이 가운데 여러 개를 지금도 볼 수 있어요. 광장에 섰던 신전 Maison Carrée(메종 카레)는 1세기 초에 Auguste 의 후계자로 여겨졌다가 일찍 죽은 손자 Gaius 와 Lucius Caesar 에게 바친 것으로,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사진: Krzysztof Golik, Nîmes 의 Maison Carrée, CC BY-SA 4.0
1세기 말에 지은 Nîmes 의 원형 경기장(les Arènes)은 관중을 2만 4천 명까지 받았습니다.

사진: Wolfgang Staudt, Nîmes 의 원형 경기장, CC BY 2.0
Orange 의 고대 극장은 길이 103m, 높이 37m 의 무대 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가운데 벽감에 Auguste 의 동상이 서 있죠.

사진: Paul Hermans, Orange 의 고대 극장, CC BY-SA 4.0

Paris 의 옛 이름 Lutetia(Lutèce)에도 로마식 도시가 섰습니다. 지금의 5구에는 1~2세기에 지은 원형 경기장 Arènes de Lutèce 가 남아 있고, 중세 박물관(Musée de Cluny) 안에는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지은 목욕탕의 냉탕(frigidarium)이 14m 넘는 둥근 천장까지 그대로 서 있어요.

사진: Traumrune, Musée de Cluny 의 로마 목욕탕 냉탕, CC BY-SA 3.0
4. 로마 원로원에 들어간 골 사람들
기원후 48년, 골의 유력자들이 로마의 관직에 오를 권리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Alésia 에서 César 를 포위했던 사람들의 자손에게 그런 자리를 줄 수 없다고 반대했지만, Lugdunum 에서 태어난 황제 Claude 는 연설로 그들을 설득했어요. 로마 역사가 Tacite(타키투스)가 옮긴 연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omnia, patres conscripti, quae nunc vetustissima creduntur, nova fuere.
의원 여러분, 지금 아주 오래된 것으로 여기는 것도 모두 한때는 새로웠습니다.
Claude 는 골 사람들이 이미 풍습과 기술, 혼인으로 로마 사람과 섞였으니 그들의 금과 재산을 밖에 두지 말고 로마로 들이자고 했죠. 그 결과 Aedui 족이 가장 먼저 원로원에 들어갈 권리를 얻었는데, 오래된 동맹이고 골 부족 가운데 유일하게 로마 인민의 '형제'라고 불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연설을 새긴 청동판은 1528년 Lyon 의 Croix-Rousse 언덕에서 나왔습니다. Table claudienne(클라우디우스 청동판)이라고 부르는 이 유물은 지금 Lyon 의 갈로-로마 박물관 Lugdunum 에 있어요.

사진: Morburre, Lugdunum 박물관의 Table claudienne, CC BY-SA 3.0
5. 섞인 신들과 처음 온 그리스도교
César 는 골족이 가장 많이 섬기는 신이 Mercure(메르쿠리우스)라고 적었습니다. 골족이 실제로 그 이름을 불렀다는 게 아니라 로마 사람인 César 가 골의 신을 자기네 신 이름으로 부른 것인데, 정복 뒤에는 골 사람들도 자기 신과 로마 신을 함께 모셨어요.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유물이 Pilier des Nautes(뱃사람들의 기둥)입니다. Tibère(티베리우스) 황제 때인 14~37년에 Lutetia 의 뱃사람 조합이 Jupiter 에게 바친 돌기둥인데, 1711년 Notre-Dame 대성당 공사 중에 땅속에서 나왔어요. 기둥에는 Jupiter·Vulcain·Mars 같은 로마 신 옆에 Esus 와 사슴뿔을 단 Cernunnos 같은 골의 신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 PHGCOM, Pilier des Nautes 의 Cernunnos, Musée de Cluny 소장
2세기에는 그리스도교도 골에 들어왔습니다. 4세기의 교회사가 Eusèbe de Césarée(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에 따르면 177년 Lyon 과 Vienne 의 신자들이 붙잡혀, 90살이 넘은 주교 Pothin(포티누스)은 감옥에서 숨졌고 노예였던 Blandine(블랑딘)은 원형 경기장에서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다가 죽었어요. Lyon 의 Lugdunum 박물관에 따르면 이때 순교한 사람은 48명이었습니다.
6. 라틴어 속에 남은 골어
골 사람들은 로마식 도시에서 살며 차츰 라틴어로 말하게 됐고, 그 라틴어가 오랜 시간에 걸쳐 프랑스어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골어(le gaulois)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3세기 초의 로마 법학자 Ulpien(울피아누스)은 유언에 따른 부탁(fideicommis)을 라틴어나 그리스어뿐 아니라 골어(gallicana)로 남겨도 된다고 적었거든요.
골어는 결국 사라졌지만 몇몇 단어는 라틴어 속에 섞여 지금의 프랑스어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프랑스어 어원 사전(CNRTL)이 골어에서 왔다고 밝힌 단어를 몇 개 꼽으면 이렇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단어
- la ruche : 벌통. 골어 rusca '나무껍질'에서 왔습니다
- le mouton : 양. 골어 *multo 에서 왔습니다
- la charrue : 쟁기. 골어에서 라틴어로 들어간 carrus '수레'에서 왔습니다
- l'alouette : 종다리
- le bouleau : 자작나무
- la lieue : 리외(옛 거리 단위). 로마 작가들이 골어라고 적은 leuca 에서 왔습니다
- gallo-romain : 갈로-로마의
7. 모두가 로마 시민이 되다
212년 황제 Caracalla(카라칼라)는 제국 안의 자유민 거의 모두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이제 골 사람도 법으로는 로마 사람과 다를 게 없어졌는데, 당시 역사가 Dion Cassius 는 겉으로는 백성을 높이는 척했지만 실은 세금을 더 걷으려는 것이었다고 꼬집었어요.
3세기 중반 제국이 흔들리자 골은 한때 로마에서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260년 무렵 장군 Postume(포스투무스)가 골에서 스스로 황제가 되어 10년 동안 다스렸고, 마지막 황제 Tétricus(테트리쿠스)는 Burdigala(지금의 Bordeaux)에서 자줏빛 옷을 입었죠. 이 '골 제국(l'Empire des Gaules)'은 274년 황제 Aurélien(아우렐리아누스)이 지금의 Châlons-en-Champagne 근처에서 Tétricus 를 꺾으면서 끝났는데, 로마 역사가 Eutrope(에우트로피우스)는 Tétricus 가 자기 군대를 배신했다고 적었어요.
골 제국은 사라졌지만 제국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4세기부터 Rhin 강 너머의 게르만족이 밀려들면서 골 땅의 주인은 다시 바뀌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글 「로마제국의 몰락」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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