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es César 와 갈리아 전쟁(la guerre des Gaules)

기원전 61년 로마. 법무관(préteur) 임기를 마치고 임지인 Hispania(지금의 스페인)로 떠나려던 한 정치인이 꼼짝없이 발이 묶입니다. 빌려준 돈부터 갚으라며 빚쟁이들이 앞을 가로막고 아우성을 쳤거든요. 결국 로마에서 가장 부자였던 Crassus 가 830 talents 를 보증해 주고 나서야 겨우 길을 떠날 수 있었는데요, 이 빚쟁이에 쫓기던 사나이가 바로 훗날 골 지방을 정복하고 로마의 1인자가 되는 Jules César(율리우스 카이사르, 프랑스어로는 쥘 세자르)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César 는 조상 골족을 정복한 원수인데, 동시에 골족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갈리아 전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골족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을 거예요. 골족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빚더미 정치인 César 가 어떻게 골 지방을 손에 넣었는지 살펴볼까요?
1. Venus 의 자손, 빚더미 위의 귀족

사진: Marie-Lan Taÿ Pamart, Tusculum 에서 나온 César 의 두상, Museo di Antichità(Torino) 소장, CC BY 4.0
César 는 기원전 100년(101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로마의 오래된 귀족 가문인 Iulius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가문은 자기들이 사랑의 여신 Venus 의 자손이라고 내세웠는데요, César 도 젊은 시절 고모 Julia 의 장례식 연설에서 우리 Iulius 집안은 Venus 에서 내려왔다고 대놓고 자랑했죠. 장례식에서 집안 자랑
여신의 자손답지 않게 돈 관리는 엉망이었나 봅니다. Plutarque 에 따르면 César 는 관직에 오르기도 전에 빚이 1,300 talents 나 됐다고 하니까요. 앞에서 본 빚쟁이 소동도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그런 César 에게 기회가 온 것은 기원전 60년이었습니다. 로마에서 가장 이름난 장군 Pompée 와 가장 부자인 Crassus 와 손을 잡고, 셋 중 누구라도 싫어하는 일은 나라에서 벌어지지 않게 하자는 밀약을 맺은 거예요. 훗날 '제1차 삼두정치(le premier triumvirat)'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Larousse 의 표현을 빌리면 '야심가들의 모임'일 뿐이었습니다.
덕분에 기원전 59년 집정관(consul)이 된 César 는 임기를 마친 뒤 5년 동안 다스릴 땅으로 알프스 남쪽의 Gaule cisalpine(지금의 이탈리아 북부)과 아드리아해 건너편의 Illyrie 를 받았고, 원로원은 여기에 알프스 너머 남프랑스의 Narbonnaise 까지 얹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 골 지방에서 일이 터집니다.
2. 『갈리아 전기』의 유명한 첫 문장
César 는 이 전쟁을 직접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갈리아 전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 프랑스어로 la Guerre des Gaules 입니다. 첫 문장이 아주 유명한데요,
Toute la Gaule est divisée en trois parties : l'une habitée par les Belges, l'autre par les Aquitains ; la troisième par ceux qui dans leur langue s'appellent Celtes, et dans la nôtre Gaulois.
골 지방 전체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한 곳에는 Belges 족이, 또 한 곳에는 Aquitains 족이, 나머지 한 곳에는 자기들 말로는 켈트족, 우리말로는 골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산다.
앞 글에서 켈트족이 스스로를 켈트라고 불렀지만 로마 사람들은 Galli 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이 문장에 그대로 나옵니다. 라틴어 원문도 'qui ipsorum lingua Celtae, nostra Galli appellantur(자기들 말로는 Celtae, 우리말로는 Galli 라고 불린다)'죠.
재밌는 건 이 책에서 César 가 자기 자신을 '나'라고 하지 않고 거의 언제나 'César 는'이라고 3인칭으로 쓴다는 거예요. 남의 일을 담담하게 전하는 것 같지만, Larousse 는 공정한 척하면서 사실은 자기 전쟁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야심이 아니라 로마를 위해 싸운다고 믿게 하려는 글이라고 평가합니다. 전쟁터에서 직접 쓴 홍보물이었던 거죠. 모두 8권인데, 마지막 8권은 César 가 아니라 부하 Aulus Hirtius 가 이어서 썼습니다.
3. 기원전 58년, 이사 가려던 Helvètes 족

지도: historicair, 「Caesar campaigns gaul-fr」, CC BY-SA 3.0. 화살표 색은 로마군이 움직인 해를 나타냅니다
전쟁의 시작은 의외로 이사였습니다. 지금의 스위스에 살던 Helvètes(엘베트)족이 살던 땅을 통째로 버리고 서쪽으로 옮겨 가겠다고 나선 거예요. 기원전 58년 3월 28일 Rhône 강가에 모이기로 한 이들을 막으려고, César 는 Genève(쥬네브)로 달려가 다리부터 끊어 버렸습니다.
César 의 기록에 따르면 길을 나선 사람은 무려 36만 8천 명(!)이었는데, 싸움에 지고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11만 명뿐이었습니다.
같은 해 여름 César 는 라인강을 건너와 골 지방에 자리 잡은 게르만족 왕 Arioviste(아히오비스트)까지 몰아냈습니다. 싸움에 진 Arioviste 는 강가에 묶여 있던 작은 배 한 척을 찾아 타고 겨우 달아났죠. César 는 '한 여름 동안 큰 전쟁 두 개를 끝냈다'고 적었습니다.
4. 기원전 57~56년, 북쪽의 Belges 와 바다의 Vénètes
이듬해에는 골 지방 북쪽의 Belges(벨쥬)족이 로마에 맞서 똘똘 뭉쳤지만 César 에게 차례로 무너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로마 원로원은 신들에게 감사하는 축제를 15일이나 열기로 했는데요, César 는 이것이 '그때까지 누구도 받아 본 적 없는 영예'라고 꼼꼼히 적어 두었습니다. 자랑은 절대 빼먹지 않는다
기원전 56년에는 지금의 Bretagne 남쪽 바닷가에 살던 Vénètes(베네트)족과 바다에서 싸웠습니다. César 의 기록을 보면 Vénètes 족의 배는 얕은 바다에 맞게 바닥이 평평하고, 이물과 고물이 높이 솟았으며, 통째로 참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닻은 밧줄 대신 쇠사슬에 매달았고, 돛은 천이 아니라 가죽(!)이었다고 하죠.
이렇게 튼튼한 배를 로마 배로 들이받아 봐야 소용이 없자, 로마군은 긴 장대 끝에 날카로운 낫을 달아 돛을 매단 밧줄을 끊어 버리는 꾀를 냈습니다. 돛이 떨어진 배는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결국 Vénètes 족은 항복했죠. César 는 본보기로 원로들을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5. 기원전 55~54년, 열흘 만에 놓은 다리와 바다 건너 Britannia

그림: Napoléon III, 『Histoire de Jules César』 지도책 15장 「Pont de pilotis construit sur le Rhin」, 스캔 Dudenw, CC BY-SA 4.0
기원전 55년, César 는 라인강(le Rhin)을 건너기로 합니다. 게르만족이 툭하면 골 지방으로 넘어오니, 로마 군대도 마음만 먹으면 강을 건너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서 겁을 주려는 것이었죠. 배로 건너는 건 로마 인민의 위엄에 맞지 않는다며 다리를 놓았는데, 목재를 나르기 시작한 날부터 딱 열흘 만에(!) 다리를 완성하고 군대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강 건너에서 18일을 머문 뒤 돌아오면서는 그 다리를 다시 부숴 버렸어요. 열흘 걸려 만든 걸... 위 복원도는 다음 글에 나올 Napoléon III 가 쓴 César 전기에 실린 것입니다.
같은 해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바다 건너 Britannia(지금의 영국 브리튼섬)에도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골족이 로마와 싸울 때마다 그곳에서 지원군이 건너왔다는 게 이유였죠. 배가 해안에 닿았는데 바다가 깊어서 병사들이 머뭇거리자, 제10군단의 독수리 깃발을 든 병사가 "뛰어내려라, 병사들아! 독수리 깃발을 적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면! 나는 나라와 장군에 대한 내 할 일을 다하겠다" 하고 외치며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듬해 César 는 군단 다섯 개와 기병 2천을 이끌고 다시 건너가 그곳 왕 Cassivellaunus 의 항복을 받고 해마다 바칠 공물까지 정했습니다. 다만 Larousse 는 이 공물이 '거의 이론상의 것'이었다고 보죠. 받으러 갈 수가 있어야지
6. 기원전 54~53년, Ambiorix 의 반란과 César 의 복수
하지만 골 지방이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54년 겨울, 골 지방 북동쪽에 살던 Éburons(에뷔홍)족의 왕 Ambiorix(앙비오힉스)가 들고일어나, 겨울을 나던 로마군 1개 군단 반을 몰살시킨 거예요. 장군 Sabinus 는 협상하러 나갔다가 죽고, 끝까지 버티던 병사들은 밤이 되자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화가 난 César 는 이듬해 Éburons 족의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웃 부족들에게까지 이 부족의 씨와 이름을 없애라며 약탈을 부추겼습니다. 그런데도 Ambiorix 는 기병 넷만 데리고 끝내 빠져나갔죠.
대신 반란을 꾸민 Senones 족의 지도자 Acco 가 붙잡혀 로마의 옛 관습대로 처형됐는데, 이 일이 오히려 골족 지도자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습니다. 기원전 52년 겨울, 그들은 인적 드문 숲속에 몰래 모여 Acco 의 죽음을 슬퍼하며 골 지방의 자유를 되찾자고 다짐했어요.
7. 전쟁이 남긴 숫자
César 가 골 지방에서 싸운 8년(기원전 58~5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Plutarque 는 César 가 10년도 안 되는 전쟁에서 도시 800곳 넘게 함락시키고 부족 300을 굴복시켰으며, 맞서 싸운 300만 명 가운데 100만 명을 죽이고 100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적었습니다. 고대 작가들의 숫자라 부풀렸을 수 있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한 전쟁이었던 건 분명하죠.
재밌게도 로마 사람 중에도 이 숫자를 곱게 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물학자 Pline l'Ancien(대 플리니우스)은 César 가 내전을 빼고도 전투에서 119만 2천 명을 죽였다며, 이것을 영광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해악(humani generis iniuria)'이라고 불렀거든요.
8. 프랑스어 속에 남은 César
César 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그의 이름과 그가 남긴 말이 프랑스어 곳곳에 남아 있거든요.
juillet(7월) — César 가 죽은 기원전 44년, 그가 태어난 달 Quintilis 는 그를 기려 Iulius 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프랑스어 juillet 는 '작은 6월'이라는 뜻의 옛 프랑스어 juignet 이 Iulius 에서 온 juil 의 영향을 받아 생긴 말이에요. 6월(juin)과 7월(juillet)이 닮은 건 그래서죠.
Kaiser 와 tsar — César 라는 이름은 아예 '황제'를 뜻하는 칭호가 되어 독일어 Kaiser, 러시아어 tsar 로 이어졌습니다.
franchir le Rubicon — 기원전 49년 1월, César 는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와 Gaule cisalpine 의 경계인 Rubicon(휘비콩) 강을 건넜습니다. 장군이 군대를 거느리고 이 강을 넘는 것은 법을 어기고 로마와 내전을 시작한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프랑스어 franchir le Rubicon(휘비콩 강을 건너다)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다'라는 뜻으로 씁니다.
Le sort en est jeté — 이때 César 가 했다는 말이 'Iacta alea est(주사위는 던져졌다)'인데, 프랑스어로는 Le sort en est jeté 라고 합니다. 그런데 Plutarque 는 César 가 이 말을 그리스어로 외쳤다고 적었으니, 어쩌면 라틴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Veni, vidi, vici — 기원전 47년 지금의 튀르키예 땅 Zela 에서 적을 단숨에 무찌른 César 는 개선식에서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쓴 팻말을 앞세웠습니다. 프랑스어로는 Je suis venu, j'ai vu, j'ai vaincu 입니다.
Rendre à César ce qui est à César — 'César 의 것은 César 에게 돌려주라'는 이 표현의 César 는 Jules César 가 아니라 예수 시대의 로마 황제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나온 말로, 각자 제 몫은 제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뜻으로 쓰죠.
Toi aussi, mon fils ! — 마지막으로 César 가 암살당하며 Brutus 에게 했다는 '너마저, 내 아들아!'. 그런데 정작 Suétone 은 César 가 첫 칼을 맞고 말없이 신음만 냈다고 적었고, 어떤 이들은 그가 그리스어로 "너도냐, 얘야?" 라고 했다고 전한다는 말만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라틴어 'Tu quoque, mi fili'는 고대 기록 어디에도 없는 말이에요.
자, 이제 다시 기원전 52년 겨울로 돌아가 볼까요? Acco 의 죽음에 분노한 골족 지도자들이 숲속에 모였고, 곧 골 지방 전체를 뒤흔들 봉기의 한가운데에 한 젊은 Arvernes 귀족이 서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Vercingétorix 편에서 이어집니다.
지름길 프랑스어 블로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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