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은행계좌 만들기, 준비 서류부터 RIB 와 droit au compte 까지

프랑스에 막 도착하면 집 계약서에도, 휴대폰 개통 화면에도, 학교 서류에도 똑같은 말이 보입니다. "Votre RIB, s'il vous plaît."(RIB 를 주세요.) 프랑스 은행 계좌가 있어야 월세가 빠져나가고 월급과 의료비 환급이 들어오기 때문에, 계좌가 없으면 정착이 한 발짝도 나가지 않죠.
은행 직원과 프랑스어로 상담할 생각을 하면 막막합니다. 하지만 별거 없습니다. 서류 몇 장만 챙기면 되고, 은행이 끝까지 안 열어 주면 Banque de France 가 대신 은행을 정해 주는 제도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과 다른 프랑스 은행의 방식부터 은행 고르기와 준비 서류, RIB 읽는 법, 거절당했을 때와 한국으로 돌아갈 때 계좌를 닫는 법까지 살펴보겠습니다.
1. 프랑스 계좌가 필요한 이유
프랑스에서 돈이 오가는 길은 대부분 계좌이체(virement)와 자동이체(prélèvement)입니다. 월급이나 수당을 주는 곳은 내 RIB 에 적힌 IBAN 으로 돈을 보내고, 전기 요금이나 통신 요금처럼 다달이 나가는 돈은 내가 서명한 자동이체 위임장과 RIB 를 받아 그 계좌에서 빼 가죠(Banque de France). Campus France 도 유학생에게 월세·전기·전화 요금을 내고 월급을 받고 의료비를 돌려받으려면 계좌가 있는 편이 훨씬 편하다고 안내합니다(Campus France).

이 두 가지는 유럽 단일 결제 지역(SEPA) 안의 계좌끼리 오가는데, SEPA 는 EU 와 그 주변 몇몇 나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국 계좌는 여기에 들지 못합니다(Banque de France). 한국 통장을 아무리 잘 챙겨 와도 프랑스 생활비 계좌는 따로 하나 열어야 하는 이유죠.
알아두면 좋은 단어
- compte courant : 입출금 계좌(compte de dépôt 라고도 함)
- RIB (relevé d'identité bancaire) : 계좌 정보 증명서
- virement : 계좌이체
- prélèvement : 자동이체
- convention de compte : 계좌 약관
- frais de tenue de compte : 계좌 관리 수수료
- conseiller : 담당 상담원
- prendre rendez-vous : 약속을 잡다
2. 한국과 다른 프랑스 은행
프랑스 은행 지점에 처음 들어가면 한국과 너무 달라서 당황하기 쉽습니다. 한국 은행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여러 창구에 앉은 은행원 가운데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일을 봐 주지만, 프랑스 은행에는 입구 안내 데스크(accueil)에 직원이 한 명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비어 있을 때가 있죠.

대신 프랑스 은행은 고객마다 담당 상담원(conseiller)이 한 명씩 붙습니다. 계좌를 여는 일도 이 상담원과 약속(rendez-vous)을 잡고 그 시간에 맞춰 찾아가서 하는 일이라, 약속 없이 지점에 들어가 계좌를 열어 달라고 하면 약속부터 잡고 다시 오라는 말을 듣기 쉽습니다. 약속은 지점 안내 데스크나 전화, 은행 웹사이트로 잡을 수 있으니 계좌가 급하면 미리 잡아 두세요. "Bonjour, je voudrais prendre rendez-vous pour ouvrir un compte."(안녕하세요, 계좌를 열려고 약속을 잡고 싶어요.) 이 한 문장이면 됩니다.
3. 은행 고르기
계좌를 열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동네에 지점이 있는 일반 은행(banque traditionnelle), 지점 없이 인터넷과 전화로만 일하는 온라인 은행(banque en ligne), 그리고 휴대폰 앱으로 여는 néobanque 가 있죠.

일반 은행은 앞에서 말한 담당 상담원을 직접 만나 일을 보는 곳이라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지점을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온라인 은행은 직원이 적은 만큼 비용이 낮고 카드가 무료인 경우가 많지만, 소득 조건이나 최소 잔액을 걸기도 하고 일반 은행의 RIB 를 내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프랑스에 실제로 살면서 세금도 프랑스에 내는 사람이어야 하죠(mesquestionsdargent). 온라인으로 계좌를 열면 은행이 본인 이름으로 된 다른 계좌와 첫 이체를 주고받으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service-public).
néobanque 는 대부분 은행이 아니라 결제기관(établissement de paiement)이라서 그곳의 계좌는 compte de paiement 입니다. 카드, 이체, 자동이체, RIB 는 다 되지만 수표책과 저축 통장이 없고 마이너스 통장도 허락하지 않습니다(mesquestionsdargent). 잔액이 모자라면 1센트도 더 쓸 수 없고, 현금을 넣거나 뺄 때 수수료를 받는 곳이 많다고 Banque de France 가 설명합니다(mesquestionsdargent).
이런 계좌나 다른 EU 나라 계좌의 IBAN 을 주면 "FR 로 시작하는 RIB 를 달라"는 곳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자동이체나 계좌이체로 요금을 받는 쪽(créancier)은 다른 SEPA 나라에서 만든 IBAN 도, 결제기관이 만든 IBAN 도 거절할 수 없고, 거절당하면 SignalConso 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Banque de France).
4.1. 누구나 내는 서류
은행에 가져갈 서류는 사진이 붙은 유효한 신분증과 주소 증명, 이 두 가지입니다. 신분증은 여권이나 체류증이면 되고, 프랑스에 합법적으로 머물고 있으면 외국인도 계좌를 열 수 있습니다. 주소 증명으로는 월세 영수증(quittance de loyer)이나 수도·전기 요금서를 내고, 다른 사람 집에 얹혀살면 은행이 집주인의 숙박 증명서(attestation d'hébergement)를 함께 달라고 할 수 있죠. 그 자리에서 서명도 남기는데, 은행이 이 서명을 등록해 둡니다(service-public).

은행은 돈세탁을 막아야 하는 의무가 있어서 지금 하는 일과 소득, 계좌로 들어올 돈의 출처, 계좌를 어떻게 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은행은 계좌를 열 때 처음 넣을 돈도 얼마간 요구합니다(mesquestionsdargent).
4.2. 학생 · 워킹홀리데이 · 주재원
학생은 여기에 재학증명서(attestation d'inscription)나 학생증을 더 냅니다. 아직 집을 못 구했다면 학교 국제교류처(service des relations internationales) 주소를 임시로 쓸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Campus France).
워킹홀리데이(vacances-travail) 비자는 체류증 신청이 면제라서 체류증 카드를 받지 않습니다(service-public). 그래서 신분증은 비자가 붙은 여권으로 내면 되죠. 주재원과 직장인은 따로 정해진 서류가 없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은행이 하는 일과 소득을 물을 수 있으니 근로계약서를 챙겨 가면 대답하기가 쉽습니다. 장기비자 등록과 OFII 절차는 OFII 등록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5. 계좌를 열고 나서 받는 것
은행이 계좌를 열어 주기로 하면 계좌 약관(convention de compte)에 서명합니다. 약관에는 계좌를 열고 쓰고 닫는 규칙이 다 들어 있고(service-public), 수수료와 마이너스 통장 여부, 다툼이 생겼을 때 기준이 되는 문서도 적혀 있어서 잃어버리지 말고 보관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mesquestionsdargent). 계좌를 여는 것 자체는 무료이지만, 은행은 계좌 관리 수수료(frais de tenue de compte)를 받을 수 있고 그 금액은 요금표에 나와 있습니다(service-public).
그리고 RIB 를 받습니다. 계좌를 열 때 한두 장 출력해 주고, 은행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언제든 내려받을 수 있죠. 여기에는 예금주 이름과 은행 이름, 은행 코드 5자리, 지점 코드 5자리, 계좌번호 11자리, RIB 확인 숫자 2자리, 그리고 IBAN 과 BIC 가 적혀 있습니다. 프랑스 계좌의 IBAN 은 FR 로 시작하는 27자이고, 앞의 네 코드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Banque de France).

RIB 를 남에게 준다고 돈이 빠져나가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자동이체로 돈을 빼 가려면 내가 서명한 위임장이 있어야 하고, 허락하지 않은 자동이체는 은행에 이의를 제기해 돌려받을 수 있죠. 다만 메일로 청구서와 함께 RIB 를 보내며 급하게 돈을 보내라고 하는 '가짜 RIB' 사기가 늘고 있어서, 처음 보는 RIB 로 돈을 보낼 때는 상대에게 원래 알던 번호로 전화해 확인하라고 Banque de France 가 당부합니다(Banque de France).
6. 은행이 거절했을 때, droit au compte
은행은 계좌를 열어 줄 의무가 없어서 거절할 수 있습니다. 대신 거절할 때는 거절 사유를 적은 편지를 주고 Banque de France 의 droit au compte(계좌를 가질 권리) 절차를 알려 줘야 하죠. 신청하고 15일 동안 답이 없어도 거절로 봅니다(service-public).

국적과 상관없이 프랑스에 주소를 둔 사람이면 신청할 수 있고, 이미 프랑스에 입출금 계좌(compte de dépôt)가 있으면 신청할 수 없습니다(service-public). Nickel 같은 compte de paiement 나 livret A 만 있는 사람은 입출금 계좌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신청할 수 있습니다(Banque de France).
신청서에는 신분증, 3개월 안의 주소 증명, 은행의 거절 편지(또는 15일이 지난 신청 증거), 프랑스에 다른 계좌가 없다는 서약서를 붙여 Banque de France 에 냅니다. 온라인, 지점 창구, 우편 모두 되고, 거절한 은행에 대신 보내 달라고 해도 되죠. Banque de France 는 서류를 받고 1영업일 안에 은행을 정해 주는데, 이 지정은 6개월 동안 유효합니다. 지정된 은행은 3영업일 안에 필요한 서류와 찾아갈 지점을 알려 주고, 서류를 다 내면 3영업일 안에 계좌를 열어야 합니다(service-public).
이렇게 연 계좌는 RIB, 이체와 자동이체, 쓸 때마다 은행이 승인하는 카드, 매달 거래 내역서 같은 기본 서비스만 들어 있지만 계좌를 열고 쓰는 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service-public). 나중에 일반 상품으로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있는데, 받아들일지는 은행이 정합니다(Banque de France).
7. 한국으로 돌아갈 때 계좌 닫기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계좌를 꼭 닫고 가야 합니다. 돈을 다 빼도 계좌는 닫히지 않아서 관리 수수료나 휴면 계좌 수수료가 계속 붙을 수 있기 때문이죠(service-public).

계좌는 언제든 이유 없이 무료로 닫을 수 있습니다. 먼저 월세, 통신, 보험처럼 빠져나가는 자동이체를 해지하고,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돈이 있으면 그만큼은 남겨 둡니다. 그다음 계좌를 닫아 달라는 편지를 등기 우편(lettre recommandée avec accusé de réception)으로 보내고 카드와 수표책을 돌려주거나 없애면, 은행은 최대 30일 안에 계좌를 닫습니다(service-public). 편지 양식은 service-public 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
- Service-Public — 개인 계좌(Compte bancaire individuel)
- Service-Public — 계좌 개설 거절과 droit au compte
- Service-Public — 장기비자(3개월~1년 체류)
- Banque de France — RIB, IBAN, BIC
- Banque de France — 자동이체(prélèvement SEPA)
- Banque de France — droit au compte 자주 묻는 질문
- Mes questions d'argent(Banque de France 금융 교육 포털) — 계좌 열기
- Mes questions d'argent — 은행 고르기
- Mes questions d'argent — compte de paiement 이란
- Campus France — 계좌 열기(Getting a bank account)
지름길 프랑스어 블로그에 대해
지름길 프랑스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프랑스어 공부자료를 목표로 2017년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프랑스어 문법, 표현, 숙어, 속담, 사는 이야기 등을 주기적으로 포스팅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지름길 프랑스어 서버 운영비에 사용되며 더 질 좋은 글 작성에 보탬이 됩니다.